고백
나의 사랑 아들아.
때묻고 헐벗은 마음으로 너희들에게 고백한다.
얼마전, 엄마는 교통사고를 냈었다.
너희들도 까마득히 모르고 지난 몇 일의 시간들이 꿈같이 흘러갔지만 앙금처럼 남아있는 에미가슴엔 못이 박혀 그동안 침울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단다.
새벽에 현장으로 나서며 우리집 아래 삼거리에서 사고가 났지.
피해자는 중풍에 걸린 노인이셨다.
선혈이 낭자한 도로에서-너무 놀라지 말아라. 이젠 수습되어 그 분은 무사히 퇴원 하셨다- 에미가 이성을 잃지 않은 것만이 아직도 신기할 따름이다.
벌벌 떨면서 119 연락하고 응급실 가고 보험직원과 상담하고..그랬구나.
그 날, 준이가 비염으로 대학병원 예약한 날이었는데 에미가 완전 얼이 빠져 있는걸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준이는 그랬지.
"엄마, 너무 걱정말아요. 비염이 무슨 큰병인가. 난 괜찮아..."
몇번이나 말하고 싶어 입을 달싹거렸지만 엄마의 괴로움을 어찌 같이 나누자고 그러겠니.
어쨌거나 과중한 사고에 어처구니 없게도 아니 너무 다행스럽게도 경미한 결과로 그분이 퇴원하게 되었음을 이제사 고백한다.
모든 촬영검사에 이상없이 외상으로 입은 상처에 꿰멘부위 염증만 치료하면 된다더구나.
그동안 가슴 졸이다 추석 전 날에야 병원가서 얘길 듣고 나오며 생각했지.
풀 한포기 일생에도 진실이 있듯, 엄마의 진실은 너희들에게 양심, 윤리, 규범에 대해 읊었던 시간들이 거짓 없어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그래서 이번 연휴에 三寺를 돌며 엄마에 대한 자중과 자만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음에 무엇보다 너희들에게 미안함이 컸었다.
그러나 역시 내아들들인지라 아뭇소리 않고 따라주고 응해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지리산 자락을 목적지로 잡고 쌍계사, 연곡사에 이어 화엄사, 천은사로 간다는 말에 엄마, 절잔치 해? 하는 우스개에 속으로 뜨끔하며 조용한 시간에 직접 너희들에게 고백을 해야겠다 다짐했으면서도 말로선 용기가 안나더라.
시간이 흐르면 다소 너희들도 크게 놀라지 않을거란 위안에서 이 방법을 쓴다.
나의 사랑 아들아.
엄마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싶었다.
불의의 사고속에 가장 괴로운건 피해자임에도, 보험사에서의 흥정은 참 많은 비애를 느끼게 하더구나.
무엇보다 더 슬펐던 것은 엄마의 영혼 양심이 너무 약한, 그것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너희들에게 직접 얘기를 못한것을 보더래도 엄마의 양심은 아직도 작다는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