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지평선이 어둠 속으로 익사하는 시간, 숲길에 올랐다.
모악산.
명산에 가면 명찰이 있고 절에 가면 산이 있다?
둘은 아무래도 불가분의 관계이다.
가을 하늘아래 단정히 앉아 있는 천왕문. 안쪽으로 보제루 계단이 보인다.
지는해, 붉은 석양, 서산 마루턱에 걸리고..
이제 임종에 든 햇볕이여, 사색의 어두움이 밀려오고 있다.
사색 찬미는 장엄한 석양 노을의 눈부신 신비를, 공경하는 마음과도 같다.
일몰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벌써 중천의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이즈음 산사의 저녁은 짧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절반이상이 산이라지?
우리처럼 국토의 7할이 산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네팔이나 스위스 빼고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 7할도 아주 양질의 산이며 그리 높지 않은 해발들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나무도 무성하고 계곡 물도 그냥 퍼 마실수 있고 동식물도 잘 살수 있어서
사람이 올라 다니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인 살.아.있.는.산.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각 밑으로 보이는 대적광전.
어떤 모습으로 내게 펼쳐질까.
일주문을 지나 근래 새로 만들었다는 금강문. 사천왕문을 넘어서 보제루 계단을 오르면
운동장만한 절 마당이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난 이런 가람배치가 가슴 저미도록 좋다.
절도 자신을 품고 있는 땅 모양을 닮는 것일까.
김제의 넓은 평야가 얼핏 떠오를 만한 넓이다.
땅덩이에 비해 전각의 수가 많지 않아 더 넓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정면 7간의 대적광전.
사찰은 종교적인 서역임은 물론이지만 귀중한 문화재이고 또한 비길바 없이 아름다운 예술의 전당이어서
종교적신앙심은 물론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사찰의 유구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또한, 아무리 마음이 복잡하고 피로할지라도 절을 찾으면 한량없는 위안을 받으며 새로운 생기가 솟아난다.
그 절이 고찰이면 더욱 좋고 아무도 없는 고요한 절이면 더더욱 좋겠지.
텅빈 경내를 홀로 걸으면 현실세계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격리요 도피이지만 다른 한편 나 자신과 대좌하고
나자신의 본성과 만날수 있어서 더없이 좋다.
절에는 바위와 소나무가 있고 출가한 산사람들이 살고 있고 선조의 문화와 사상이 있고
깊고 너른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모두 도태되고 밀려나고 허물어져 버린 우리들의 과거에
그 역사의 비바람 속에서도 아직 버티고 있는 게 절이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겐 과거가 있어야 하고 그 나라에는 역사가 있어야 하고 사랑에는 추억이 있어야 한다?ㅎ
그 과거는 조상이고 전통이고 역사이고 무의식이다.
이게 남아 있어야 인간은, 세상은, 병에 걸렸을 때 치유 받을 수 있다.
정면 7간 측면 4간의 넓이로 한없이 넓은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한 대적광전의 측면모습.
모든 불보살들을 대담하게 종합해놓은 법당이 특이했다.
덕분에 절은 수없이 많이 했슴.
주불인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의 5여래와
문수. 보현. 관세음. 대세지. 일광. 월광 6보살을 모셔놓음.(네이버 검색)
편안함의 근원. 상상해본다.
보고 싶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진 사찰의 서가 앞에서 맘껏 책을 펼쳐 읽는 나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자칫 허전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절 마당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은 미륵전의 위용이다.
삼층법당인 미륵전. 겉보기에는 3층이지만 안에는 모두 트인 통층 팔자지붕 다포집.
웅장한 하부의 규모에 비해 상부의 체감이 심하기 때문에 매우 장중하면서도 안정감 있어 보인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미륵전의 고풍스런 색감이 그지없이 좋다.
보고 또 보고 있어도 그저... 좋다.
미륵전에 들어 서다가 갑자기 섬칫해졌다.
가슴이 철렁 하는 놀라움이다.
크기에 놀라고 그 위용에 놀라고 엎드려 절을 하고 막 고개 드는 순간 부처님 얼굴에 놀란다.
놀란채로 바라다 보며 허리를 일으키는데 잠깐 사이에 그 얼굴은 흐트러져 버리고 만다.
자꾸 보니 부처님 모습이 내가 보고 싶은 얼굴이기도 하다.
감모여재란 말이 있지.
보고 싶은 지극한 소망에서 일심으로 생각하면 그윽한 경지에 도달하였을 때 그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난 저 부처에서 어떤 얼굴을 보고자 했던 것일까.
내가 지금 바라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은 과연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감모여재라.. 다음에 다시 왔을 때 내 눈에 비친 저 얼굴은 늘 같을까?
아니면 바뀌어져 있을 것인가.
예배를 다 드리고 입구쪽 스님에게 절을 하고 나오려는데,
"저를 따라 오시지요." 하며
스님이 미륵불과 촛불단을 사이에 둔 반지하 계단으로 나를 이끈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이곳은 1400여년 동안 보존해온 부처님의 발(足)이 있는 곳이며, 밑으로 손을 넣어 만져보시고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을 빌어보세요...업장소멸과 소원성취 하시길 바랍니다."
ㅎㅎ 오후의 산사는 아무리 까칠한 보살님이나 엄격한 스님의 배려가 다소 너그러워져? 좋다.
아마 오후의 빛이 주는 따뜻함이 아닐런지.
어쨌든 이몸은 그런 혜택까지 받았다는거.^^
보리수 나무가 있는 벤치에 앉아 있으니 한 젊은스님이 종종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아마 저녁예배 시간이리라.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났던건,
경내에 쏟아지고 있는 그 화려한 가을 석양빛 때문에.
그네들의 치열한 금욕의 시간,
한 시대의 종말을 준비하는 기간이며 삶이라는 내일의 발소리를 듣는 시대.
아..그랬다. 나도 저런 금욕의 시절이 있었었지.
대.학.이.란.걸. 가기위해 재수생활을 했던.
지금은 이름도 가물한 암자에서 고시공부도 아니면서 단지 학교를 가기위해-지금은 정말 부질없다 생각하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슬픔이나 기쁨을 그때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들보다 더욱 사랑했고 아꼈으니까.
아직도 철이 없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환멸이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어떠한 형태의 사랑이든간에 애정이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란 것을 알수 없듯이.
나한전과 조사당
전각은 크고 작고 높고 낮은 지붕들이 조화를 이루어 사찰은 하나의 유기적인 예술체를 이루고 있다.
서로 의지하면서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며 시샘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화합과 이해로서 잘 조화를 이룬다.
지붕끝을 따라가면 하늘에 느슨하고도 커다란 원이 생긴다.
그 집속에 사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 하늘위에 이렇게 커다란 원이 되어 피어오르는 것 만 같다.
특히 법당의 지붕은 총총히 박은 서까래와 부연을 달고 여러겹으로 된 공포를 만들어서 장엄하고 육중하다
지붕을 지탱해주는 수많은 서까래는 하나하나가 제 몫을 다하며 단결된 힘으로 묵직한 무게를
긴 세월동안 감당해 낸다.
난 향수를 느낄수 있는 이런 절집이 참 좋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석종,고려시대의 계단 양식을 가장 정확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석종 윗부분에 조각된 아홉 마리의 용은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아홈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목욕 시켰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함.
종종 무리를 이은 관광단체에 엉겨 붙어 슬쩍 듣는 이런 귀동냥도 재미진다.ㅎ
전각들은 정유재란 때 금강문 하나만 남겨 놓고 모두 불탔다고 하는데,
임진왜란때 거의 그 많은 당우가 철저하게 폐허화된 것을 1601년(선조 34년)에 수문대사가 재건한뒤
부분적인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화강암이 아닌 점판암이 특이하다.
맨위 2개층의 탑신으로 볼 때 각층의 탑신도 그리 높지만은 아닌것 같지만 비례가 매우 안정적이면서
다른 석조물에 비해 조각의 아름다움이 특히 마음에 든다.
처음 지어졌을때만 해도 소규모 사찰이었던 금산사가 지금의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진표율사가 중창하면서 부터.
고려시대인 1079년 금산사는 혜덕왕사에 의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석련대. 오층석탑. 노주등 현존하는 주요 석물들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 함.
당간지주로선 고성에서 보았던게 개인적으론 인상이 깊었는데 나름 아담하고 소박하면서도
격식을 보이는 것 같아 좋다.
세로줄을 유심히보며 차이를 느낀다.
우리 선조들은 어떤 전각은 조잡하달수 있을 정도로 만들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이는 어떤 사물이든 모두 비교 관찰 되므로 본당을 돋보이게 하려면 다른옆의 구조물은 의도적으로 조잡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암묵적 지시처럼 여겨진다. 오버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전각의 솜씨로 보아 능히 더 잘 만들수도 있겠는데 구태여 그렇게 엉성하게 만든것은
모두 옛사람의 의도적 배려에 의한 것이 아닐까.
모두를 100퍼센트 완전하게 하면 완벽함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미학적인 원칙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것은 차면 기운다는 본연의 이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달도 차면 이지러지고 밀물이 극에 달하면 썰물이 되고 지위도 높아지면 물러나게 마련이듯.
그래서 한면 모퉁이에 미숙한 부분을 남겨 놓은 것처럼.
이러한 것까지 배려한 예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느새 텅 빈 경내는 일몰의 빛으로 가득차 있다.
사방은 간혹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뿐 소리없이 고요하고.
고요한 정적에 휩싸여 나의 숨소리조차 조심스럽다.
그 어둑한 하늘을 달이 여신처럼 지배하며 우뚝 솟아 오르고 이름도 모를 꽃초롱은 하얗게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웠으나 경이에 찬 것이리라.
나는 그속에서 눈물겹도록 행복했으나 그것은 잡히지 않는 세계였다.
그 완벽함에 대해 느꼈던 절망 비슷한 것, 나는 어쩔 수 없는 속세의 인간이기에.
미륵신앙의 진표율사.
백제의 아픔. 신라에 나라를 빼앗긴 뒤 백제 사람들이 입었을 물질적. 정신적 피해들...
현세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미래에 집단적으로 자신들을 구제해 줄 미륵을 기다리는 백제 사람들의
소망이 구현된 것이 금산사.
난 앞으로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중창한 사찰에 애착이 더 가중되지 싶다.
하루를 온통 백제시대로 입성하다 보니 채색된 아름다움에 바틋한 일정에도 피로는 뒷전이고
돌아오는 내내 더없이 산뜻하고 가벼워서 꼭 이 가을이 가기전 오롯이 금산사만 다시 보러 오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