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새 달력을 건지도 벌써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
휴대폰에 기념일이며 새해 일정을 저장해 놓으며..... 어느 해와 다를 것 없이 한 해를 맞았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사라져 가는 한 해와 새로운 한 해를 이야기하는 감동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 어쩌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겨우.... 블로그를 맞이합니다.
아 잠깐 병원에서, 현장에서, 폰으로 엄마 얘기를 올린 적이 있었군요.
생각해보니 올해는 달라진 것도 많습니다.
엄마의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중환자실 입원이며 주니가 스튜디오 오픈한 것이며.... 이 굵직한 사건 외에 주변의 잡다한 인간관계의 다변화입니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니 저는 약하면서도 늘 강한 것처럼 살아온 한 해 한해였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스스로를 속여야 할 때도 있었고, 약한 자신이 싫어서 내 가슴 안의 진실을 남에게 내비치는 걸 꺼려한 적도 있었습니다.
거북이 등처럼 딱딱하게 자신을 감싸고 남들과 동떨어진 삶을 원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돌아보면서, 왜 약한 사람 그대로 그렇게 살지못했나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약한데 왜 나는 나의 약함을 피하고 숨기려고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 또한 그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약한 자신을 숨기지 않는 곳에 진실이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나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잠언이나 격언 시 중에 요즘 부쩍 중얼거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불을 더 좀 밝혀다오. 나는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이것은 오 헨리가 남긴 유언입니다.
퇴근하는 길에 문득 이 글이 생각나서 한참을 울었더랬습니다.
그래서 며칠전 부터 행한 일 중의 하나가 엄마 집에 들러 불을 켜고 오는 일입니다.
얼마나 집에 오고 싶어 할까. 그러면서 말이지요.
또 눈물이 나는군요...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계절이 그렇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하루하루들.
기다리지 않아도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오는데. 길자는 이제 오지 못합니다.
이렇게 그리움만 방구석구석에 묻어둔 채.
그런데도 나는 기다립니다.
어쩌면 어김없이 찾아올 그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간, 그게 또한 내가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림에는 희망이라는 옵션이 따르니까요.
희망은 가난한 자의 양식이다"라는 영국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물질의 풍요만이 아닙니다.
영혼의 가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희망만이 믿을 수 있는 곳간이라고...
무겁고 어둡게 육신이 문을 닫고, 영혼이 그 육체를 빠져나가 자유로워지는 그날도 올 것입니다.
세상에 이것을 누가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황홀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낱말 중에 여행 사랑...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술과 음악이 그렇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음악이겠지요.
얼마 전 <싱어게인>을 아주 재밌게 보았더랬습니다.
2회 때인가... 처음 30호 가수의 노래를 접했을 때 아...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납니다.
헤비메탈의 끝판을 보여 주었던 69호, 제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닌데 전율을 느꼈다면 확실한 실력자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음악은 새로운 곡을 듣고 있으면 그것대로 좋고, 몸에 맞는 옷처럼 즐겨 듣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거기 얽힌 추억들이 있어서 또 너무 좋고.
아주 좋은 노래나 반주를 만났을 때 무엇을 느끼나요?
환희! 그리고 부자가 된 기분. 그리고 뭔가 다른 사람 거 뺏어온 거 같은,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는... 그런 평화.
거기에 술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술은 신의 눈물이라고.
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이라고.
술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제가 요즘 그 공존하는 곳에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