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노동의즐거움

慧圓 2009. 8. 4. 01:18

 

 

아들아.
며칠전 부터 주차마당에 수국이 한아름 피어있다.
너희들이 잠시 떠난사이 어찌 저렇게 함박처럼 피었는지.
지난여름 꽃시장에서 사와
집안에서 잘 키워보리라 하며 물도 주고 통풍에 신경까지 쓰며 애를 써봤지만 이상히 시들어가던걸 기억하겠니?  그런데 그런 수국이 물론 옆 동 할머니의 정성도 있지만, 엄마는 그 꽃의 윤회 같은 생명을 본다.

지난여름 가지가 찢어지고, 제일 굵은 가지 하나는 말라서 잘려나간 그 늙은 수국은 옆집의 그늘, 틈새바귀 에서..

척박한 환경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는 꽃이다.그러나 봄이면 어김없이 그는 잎을 틔웠고 여름이면 꽃을 피워왔다.
초여름이면 함박같은 터질 것 같은 웃음으로 피어나

엄마에게 앉아 쉴 수도, 저녁이면 소주를 마실 수도 있는 정취를 만들어주지 않더냐. 

그것이 일이란다.

자신의 노동에 대해 경멸하는 사람은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 된다.
자신의 삶 그것을 경멸하는 사람이다.
그것보다 더한 불행은 없는 거란다.
행복이라는 말의 깊이를 엄마는 아직 모른다.
겨우 내가 이해하는 것은 평화라는 거란다.
가장 행복한 시간
그것은 평화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닐까.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안다.
행복이라는 추상 명사가 아니라
그것을 보통 명사로 불러볼 때의 행복한 사람.

그사람이 누구인지 아니?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란다.
그렇게 간단한 것인데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란 먼 어느 곳에나 있는 줄 안다. 

자기 일을 사랑하면 되는데. 네 일을 아니 공부를 사랑하거라.

그 안에서 즐겁거라. 그때 너는 행복할 테고, 그런 너를 바라보며 엄마는 평화롭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