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소리

봄이지만 서리가 내려...

慧圓 2012. 3. 16. 19:09

 

 

"컴터 잡고 있는 여자들 집구석 보면 엉망이야. 설겆이는 쌓여있고 빨래감이며 집안 청소며 애들 밥이나 제때 챙겨주나..

오로지 pc앞에 왼종일 그러고 있다니까"

그녀는 화장실 타일 바닥을 웬수진 듯 벅벅 문지르면서 말한다.

---뭐, 모두 다 그럴려고?...

"아녀~ 우리 시누들 집에 가보믄 내일 당장 이사갈 집처럼 해놓고 사는데 정신이 하나 없어.  큰 동서도 마찬가지여.

 아주 발디딜 틈도 없어 발로 슬슬 치우며 다닐 정도인데도 치우질 않고 그 넘의 컴터만 붙잡고 있다니까!"

 ---밖의 일을 갖고 와서 하는게지...

"하이고~회사나 댕기면서 그러면 말도 안해. 둘 다 집구석에 놀면서 그런다니까~ 아니, 컴터에 떡이 나와, 밥이 나와!"

'킬킬..사람은 나오겠지' 내심으로 자답하며,  

허어~~참...그러면서도 그녀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은 나도 그렇게 비쳐졌나 싶어 점검을 해보니 양호하다.

개수대에 밀린 설겆이는 없고 출근하며 작동시킨 이불 빨래는 베란다에 고이 널려져 있고 준이는 워낙 깔끔병이 있어

방 정리는 고수이며 주인 떠난 민이 방은 얌전하고, 옷갈아 입을때나 출입하는 안방은 귀신이 흔적 남길리 없으니

침대 자리며 화장대며 그대로이다.

또한 우리 세 식구는 아침 거르면 난리부르스 치는 위장 보유자들 이니 해당 사항 없다.

하긴 나의 바지런이라고 뻔뻔 떨 수 없는게 엄마가 오셔서 먼지는 떨어내니 쌓여가는 때도 없는 터.  

아무리 그래도 설마 컴터 때문에 집안일을 팽개칠까...

누가 할 일들을 산적해 두고 신간 편케 잡고 있겠나 싶은데 그녀는 그 방면으론 선입견이 확고부동이다.

 

***

봄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동네 지붕들이 하얗게 서리가 앉았다.

내 마음에도 서리가 내린다. 오뉴월의 서리.

법원 앞 도로는 건물의 위상에 걸맞게 삭막하고 스산하며 인정이 없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 표정 모두 심각하다. 구역에 맞게 봄은 안중에도 없이.

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니 어느새 날은 풀려 있고 사람들 표정도 한결 부드럽다.

그러나 아직 서리가 깔린 내 마음만은 차갑다.

 

결국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삶에 있어 누가 이기고 누가 진...승부는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르는데,

무엇이 진실했고 무엇이 허위였는지 헤아림 할 것이 아닌데,

각자 치열하게 살면 그만인데,

그러나 정의란 이렇게 가야 되는건 아닐까.

지금 내 앞의 동지가 한순간 적이 될 수 있고 그리고 그 적은 언제고 다시 동지가 될 수 있다.

또한 적은 아주 가까운데 있다.

왜 나는 하나를 주면 두개가 온다고 믿고 있었을까. 그 하나 만큼의 손실만 있을진대..

쓰잘데기 하다가 뒷담화가 생기고 별일 아닌거에 오해가 생기고 그런게 자꾸 쌓이면 쓸데 없는 마음만 누적 되지 않던가.

언제나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변함 없는 생각은 참으로 많은 인간들과 관계에 회의적이 아닐수 없게 만들며 결국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관념에 빠진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나의 진실이 있었다는것과 그것에 대한 외면 당함이 용납될 수 없음이다.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보다 상대가 정의롭지 못함을 밝혀야 할 의무만 생각하자.

상대는 그나마 짧은 명을 재촉하듯 주위 사람들에게 나를 쏘삭질 한다. 몽매하기도 하여라.

덕분에 작금의 망설임을 일소 시켜 다행이지만.

그래.. 금의야행일 지라도 포기만은 하지 말자.

포기..그것은 돌아 오지 못할 선로이기에,

차라리 익숙해져 버리든가.

몸 안에서 벗겨져 나가는 비늘처럼 허무가 떨어진다.

 

 

***

우리 사회에서 기적을 이룬 기업체는 없다고 본다

자성사업가의 노력은 두말 할 나위 없는 탄탄한 원천의 근력인 것이고 운에 따라 성공한 기업은 자기 관리의 성과 일 것이다.

신뢰와 믿음의 강도가 물질적 풍요에 기인하여선 안될 것인데 작금의 세태는 정신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조야에 널려있고 그런 사람일수록 강자인 듯 싶다.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간다.

그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진 않은데 이렇게 마음이 허허로운건 자신의 부족한 역량이란걸 알기 때문이다.

오너에게 필요한건 먼 앞날을 볼 줄 알고 그 앞날로부터 현실을 소급하여 욕을 먹건 지탄을 받건 굽힘없이 실천하는 역량이 있어야 하거늘...

난 그것을 배우고 싶었다.

지도자에겐 '보스'가 있고 '리더'가 있다면 기업의 존폐나 사원들의 여망이나 미래를 생각하는 리더가 되어야 했고 

현실적인 손실에 급급하여 격하되어선 안 될 보스가 아닌 리더가 있는 기업.

 

본사에 오랫만에 들렸다.

벌써 두 자리가 비어 있다.

각자 날개를 펴고 날아간 자리엔 부재의 익숙함만이 묻어있고, 나와 거래가 없는 다른 부서의 인사는 살갑다.

변함없이 붙어 있는 표어 <三思一言>를 보며 떠오르는 아침 통화.

'누구도 믿어선 안됩니다. 자신도 믿지 마세요'

그럼 나는 허상이냐.

내가 이유를 일일히 따지고 들어도 꿈적 안 할 오너는 언제나  앞서 있고, 나보다는 먼 곳에 있으니까 이제 별리다.

오너가 장고에 들어가면 주리가 틀려도 참아주리라.

겪어 내야 할 건 겪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