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사월의 거짓말

慧圓 2017. 4. 1. 14:50


옛날에 어린 조카를 데리고 언어 순화 교육이랍시고 말장난을 훈련 시킨 적 있다.

조카가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게 하는 장난이었지만  그게 모두 내가 가르친 말들인 거라...

훈련한 말 중에 이모를 '美女' 라던지 '이쁜이모' 라 불러야 한다든지 주로 나를 신비 존재로 둔갑시켜 황당무계 단어로 조련했었는데, 그 부모의 방해로 얼마 못 가 이모의 본체를 파악했었다.

초딩 입학 전까지 잘 속아줬던 조카 놈이 정말 진지하게 물은 적 있다.

"이쁜 이모~ 이모는 왜 결혼 안했어? 그런데 어떻게 형아들을 낳았어?"

결혼은 알고 이혼의 단어를 모르는 아이에게 대답이 궁했던 난,

---마리아도 아빠없이 예수를 낳았지?.. 이모가 동정녀인거야...

듣고 있던 동생 부부의 코웃음에도 불구하고 조카놈은 정말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 고딩이 된 그놈은 장난스레 이렇게 부른다. <동전녀 이모>  

나의 악취미나 장난은 훨씬 그 이전부터였겠지만 주로 상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거나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건 뭐 내가 워낙 연기를 잘해서인지도 모르지.ㅠ



수야는 나보다 손위 연배지만 순수하리만치 담백한 사람이다.

---나 임신했나 봐.. 

"뭵!"

---어제 속이 더부룩해서 병원 갔는데...며칠전부터 내가 우울했잖아... 모두 그것 때문이었어..

"옴마야~~ 우짜노!! 미칬나! 아이고~ 그래서 니 우짤라꼬!..."

---음... 그러게. 오늘 <만우절>이라서 병원 할려나...

수야는 두 말도 없이 전화를 끊는다. 뚜뚜두....


순수보다는 무개념인 금옥이는 여지없이 4월 1일 아침에는 나를 떠올린다면서도 몇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강을 건너기에 어렵지 않게 넘어간다.

아무리 아침에 나를 떠올린들...

반응은 수야와 같았지만, "이참에 하나 낳지 그래?~" 해서 한참 푸하.


다음 희생타 미니.

---민아, 네가 이해를 해줘야 할 일이 생겼는데 네게 주니 말고 동생이 생겼어...

미니는 아주 담백하게 

"낳아야지 뭐. 근데 누규?..."

---낳으면 네가 키울래?

"내가 왜? 음... 어떻게 되겠지. 별수없지 뭐." (딱 지다운 말이다 끙)

---지가 먹을 건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야?.. 네 생각이 어떤가 싶어 궁금했는데..<만우절>이라 다행이다.

"으응~그래? 알았어"

헐~

리엑션도 없고..담담하고 넘 밍밍해서 미니는 재미가 없다.


말년 휴가 나온 주니.

---여기 앉아 봐. 엄마에게 문제가 생겼어..(거짓말이란 항상 이런 전제와 밑밥을 깔아 줘야 한다) 네 동생이 생겨 버렸네...

"..... 아,  만우절이라고?"

초간단 명료했던 주니는 그래도 잠시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은 들었단다.

예전 같았으면 그 눈치에 위트로 쳐 주었을 텐데 군대 가서 감각이 많이 무뎌졌나 보다.


어쨌거나 이제는 약발이 떨어져 씨알도 안멕히는 칭구에게 시도하는 이런 장난이 난 아직도 재밌다.

이 나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