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근생
지하에 처녀귀신이 산단다.
알파고 신드롬을 경험한 이 시대에 '귀신' 이 우스운 건지 귀신이 '산 다는 것' 이 우스운 건지 모르겠다만.
여튼, 새벽녘 현장에 들어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이제 에지간히 괴롭혔으면 오늘은 좀 쉬어라. 내일도 아니 다음 날도...
귀신을 어떻게든 달래보느라 기원제도 지내고 했었지만 그조차 무색.
척추, 갈비뼈, 다리, 앞니, 다친 이가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이런 현수막을 걸었을까...
이 현장은 운이라는 게 없다.
아예 불운과 결연이라도 맺은 것처럼 행운과 행여 원수라도 진 것처럼 요행도 없다.
비가 오지 말라고 할 때는 거의 이삼일 간격으로 오며 비나 내렸으면 할 때는 또 그렇게 쾌청할 수가 없다.
요행은커녕 균등 분배에서조차 이 현장에는 빼놓아지는 모양이다.
간선도로에 접한 현장은 열악한 중에서도 최악이다.
작업자들을 비롯 원청 관리자들까지 수없는 교체, 설계 변경에 오시공, 기후조차 따라주지 않아 공기 지연으로 벌써 사계(四季)를 넘나든다.
녹음이 신나게 짙을 때 들어간 현장 앞의 가로수 잎들이 어느새 낙엽으로 떨어지고 사시나무 떨던 가지가 다시 꽃을 피우고 연두가 초록으로 자리잡는다
답답한 심정에 바라본 하늘은 봄볕임에도 불구하고 칙칙한 잿빛이다.
지지 않겠다고..가 아니다.
이기겠다고 이겨야 한다고 머리를 쳐들고 있는 오만이 있다.
'오늘은 누구에게 지지 않겠다 발버둥치고 늘 머리를 쳐드는 나의 오만을'
외우리라 외우리라 하면서도 아직...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고 또 아주 사악하게 스스로에게 변명을 만들어낸다.
외우면 그것이 일상적인 게 될 수도 있어, 이따금 읽음으로써 오히려 늘 새롭지 않나 하고 말이지.
가슴 저 밑이 서늘해져서 앉아 있는 마음으로.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