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마치고....
---대학이란 말이다. 문득 내가 무슨 광복 20년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민이에게 말한다. 말의 숲을 헤매는 사냥꾼처럼, 좀 이른감이 있지만 수능을 끝낸 큰애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하면서 다짐한 건
교육적으로 다가서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희망이나 바람을 요구해선 안된다.
에미의 경험을 통한 후회를 반영하며 목표를 제시 해선 안된다.
였었는데 어쩔수 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우리들의 습관은 생활의 손잡이가 조금씩 익숙해져 가듯이 변한 일상으로
대학생활은 너에게 새로운 하루하루에 대한 그 나름의 방법론을 터득해 가는 즐거운 생활로 이어질 것이며
작은 습관이 생기고 작은 약속들이 간직되는 과정이 있듯이 너의 생활속에 내밀한 언어들이 생길때,
이제 사회인 이라는 인식도 싹틀 것이다.
생활의 친화력은 언제나 시간과 동행한다.
이제부턴 시간이 제약과 구속에 매였던 예전과는 달리 여기저기에 팔리지 않고 반품되어 온 물건처럼 쌓여져 있을 것이다.
남아 도는 시간을 어떻게 쓰는게 보람되고 <재미> 있는 일일까 (여기서 '가치'라는 말을 피했다)
너는 이 문제를 무엇보다 중요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될것이다.
대학이란 네가 기대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바로 그 평범한 진실을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물론 한 1년 지나고 나면 <거 뭐 대학이라는 게 별것 아니로군> <이것 너무 놀았구나> 하는거와 마찬가지로,
그러다 2학년이 되면 이제 공부를 해야겠다, 해야겠다 하면서 보내게 되지.
3학년이 되면 그땐 이미 자신이 보이지 않는 어떤 틀 속에 굳어 버렸다는 걸 느끼게 돼.
이게 아니었는데...이럴려고 온게 아닌데. 하다 보면 친구들은 하나 둘 군대로 가고 유학으로 떠나 버리고
사귀는 이성 친구에게도 뭔가 너무 일상적인 것들 때문에 답답해질 시간이지.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재학 중에 여러개의 자격증을 딴다거나 어떤 시험에 합격 한다거나...
그러나 엄마는 지금 대학의 대중(大衆)에 관해 말하고 있는거야.
4학년 때면 이미 자신은 대학을 떠나 있는 몸이 된다.
놀고 있는 사이에, 뭐가뭔지 모르고 지내는 사이에. 다른 학생들은 자신의 생활을 쌓아가고 있었음을 발견하지.
4년의 대학 과정이 입학할 때의 그 똑같은 라인에서 출발이었지만, 이미 저만큼 앞서 가는 동료들을 볼 수가 있거든.
그때야 겨우 깨닫게 되는거야 . 그때 가서야 겨우 느끼게 되지.
시간은 속사포처럼 지나 간다는 것을.
또 하나, 대학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지를 마라
엄마는 대학이란 일종의 맞춤 의상이었다고 생각한 적 있는데. 결국은 자신의 문제이지.
대학이 무엇을 보호해 주지도 개발해 주지도 않는다는 거야.
극복의 대상도 자기이고 투쟁의 궁극적 상대도 자기자신이다 말이지.
부딪쳐 보기도 전에 반질반질해 지질 않길 바란다.
변절을 이해하는,
도량도 생기고 박해를 견디는 끈기를 배우고, 체념을 소화하는 우수한 위장을 가지지 못할지언정
순수만은 잃어버리지 말거라.
부화뇌동속 일지라도 진실로 젊음을 젊음답게 살거라.
꺼질 줄 모르는 작은 불꽃 같은 희망들을 키우고,
그리고 젊음이 자유속의 방황이 특권인양 누리는 너희들보다 더 쓰라린 청춘을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았음 한다.
유대의식도, 공유하는 마음도 없으면 이 조그만 나라에서 무엇을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겠니.
지금 엄마의 소리가 모두 와 닿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냥 스치고 지나가지 말고 가슴에 스며 들어 오는 소리로 담아 놓거라.
자신의 재수 시절을 기억하며 무엇 때문에 대학에 가기 위해 고생을 했나? 스스로에게 물었던 대답은
낙오되는게 싫어서 였다.
우리에게 대학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신기루 였었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우리들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벽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것 같아서..나도 하나의 성벽을 쌓았었다.
그것을 허물기까지 또 다른 경험이 필요했지만.
합격의 기쁨은 아주 조그맣게.. 가슴에 남아 있는 기쁨이다.
누가 그러기를 기를 품어내는 것을 기품이라는데.. <기쁨>
아마 난 그 시절 나의 에너지에 기품을 더해서 내공을 쌓지 않았을까.
믿고 싶다.
민이가 허물지 않을 성벽을 쌓아 자신만의 고집으로 기품을 내어 대학생활을 마칠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