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
애환의 다리에
카세트를 옆구리에 낀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간다.
아니 왔다 갔다 하신다.
정신줄을 놓으신 할머니다.
간혹,
다리끝 <굳세어라 금순아> 현인의 노래비 옆에 앉아, 하염없이 따라 부르다 그지없는 눈길로 동상을 어루만진다.
무슨 애환으로 이 안개 속에, 홀로 자기만의 세계에서 현인과의 공유하는 공간을 가지고 있을까.
마침 라디오에서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이 흘러 나온다.
이 나이에 벌써 이런 흘러간 유행가를 듣고 우수에 젖다니.ㅎㅎ
거기 이런 가사가 있었다.
'밤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전차'
꼭 나 같아서. 갈 곳 없는 밤전차.
이런게 슬픔인가.
난 왜 이런 분위기가 슬프지?
내가 느끼고 있는 슬픔이란, 그 애환의 다리가 주는 추억이다.
한국전쟁 속에서 사람들의 만남을 이어주던 다리, 그 거리가 잠시 쓰다가 버리고 가기로 마음 먹으며 지은 것 같은 건물들이나, 아무도 그곳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들어, 언젠가는떠날 것을 약속한 채 살아가는 것 같았던 그곳 사람들이나....
마치 버림받은 아이들처럼 만나 그곳을 걸었던 사람들은 어떤 슬픔이 묻어 있지 않을까.
그때 내가 느끼고 있던 슬픔이란, 왜 나는 겨우 이렇게 밖에 살아가지못하는가 하는 그 서글픔 때문이었다.
더 수수하고 더 조그맣게 작아질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더 크게 엄청나게, 그래서 찬란하게 이 나이를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느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렇게 멀리 멀리 사라져가는 한 남자와 여자처럼 할머니는 그 밤안개 속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