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
이소장에게서 지원요청이 있었다.
진입로와 세륜기설치에 기초타설좀 해달라는 내용이다.
---허엉..그 양반한테 해달래지 왜!
"왜 그러십니까. 그쪽에 뭐가 있어야 말이지요. 자재하나 없는데.."
---KM 이 이렇게 제대로 준비하는건 첨이네.
"요새 영 삐닥선입니다."
꼬인 심사에 이소장의 핀잔도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님. 꼭 들어오셔야 됩니다. 만약 그쪽에서 들오면 얼반 뒥일겁니다."
고마워..이차장.
도면을 훑어보니 간단한 구조물과 현장 여건등에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건너편 경양식집서 바라보이는 현장전경.
훤히 들여다 보여 기공식때 모 높으신분(?) 참관자의 자리라나 어쩐다나.
삶에는 그것이 있어야 한다.
정의와 순리.
정의로움이 있어야 하고 믿음과 나눔이 있어야 한다.
자연의 순리를 보면,
물은 낮은 데로만 흐르지. 그리고 산은 제자리에 있다.
이 두 가지만 알면 거기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담겨 있는거 같다.
물에게 있어 낮은 데란 무엇인가. 그게 바로 순리라는 거고 도리라는 거다.
사람에게는 사람으로서 할 바가 있는 거고, 자기 자리가 있는 거고, 그게 바로 물이 낮은 데로만 흐르는 이치이리라.
산을 보면, 언제나 거기 있지. 무엇이 있어서 그토록 의연하겠는가.
가뭄이 든다고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초라해지길 하겠는가.
거기 그렇게 서서 언제나 베풀고 무엇이든 끌어안아 주지 않는가.
사람의 도리와 이치도 마찬가지 이거늘.
건축업 존폐율이 일반 사업자를 포함, 5년간 살아남는 업체가 30프로 미만 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누구나 쉽게 시작 할 수 있어 우후죽순처럼 생성과 폐업이 비일비재 하는것도 문제지만
대표자의 자질이나 검증이 필요한 등용시험이라도 있어야 되질 않겠나 하는 치기어린 생각도 든다.
절이 망하려니까 새우젓 장수만 모여든다더니,
상전벽해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옹지마도 아니다만, 아무리 터닝 포인트 시기라 해도 밉다 밉다 했던 그 양반이
내 영역으로 들어올 줄이야 꿈엔들 알았나.
생각하면 참...뒷집 짓고 앞집 뜯어내라는 꼴이지.
전생에 웬수진 것도 아니고..한다 한다 해도 너무하는군.
휴.. 재 넘어가니 산이고, 산 넘어가니 영일세
어디면 어떠랴, 누구면 어떠랴.
이제 가는 곳이 어디든 누가 침범하든 내 할 일이나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싶다가도 변죽이 난다.
옛말에 선비 논 데 용 나고, 학이 논 데 비늘 쏟아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뭔 일을 하든 다 그 자리에 남는 게 있다는 소리 아니더냐.
그 양반 한 행실이 있는데 온전하겠어?
그렇다고 나도 사또 너도 사또면 아전은 어느 놈이 한다니.
많은 말들이 가슴에 칼질을 해대고 있었다. 희망을 버려야 하는가.
애초 추운 세월을 춥게 살겠노라 하며 시작했었고 마음을 비웠노라 했으니 되었다고,
피 흐르는 생채기에 소금이 뿌려지는 것 같은 쎄한 느낌에 생각을 바로잡아 보지만,
떨어진 고무신에 날개라도 달고 싶게 급한 마음의 한쪽에서는 그것보다 더 무겁게 물먹은 짚단처럼 가슴에 내려와
처억처억 쌓이는 암담함이 있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얼음장이 갈라지는 것 같은 기분은 집에 까지 오는 동안 내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따라 참담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하며 저물어가는 석양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천천히 어둠속으로 잦아든다.
어느새 봄이오고, 마당가의 오동잎 너울거리며 피어날 때면 산에서 뻐꾸기는 울게 되어 있느니라.
예나 이제나 지나가는 저 바람 소리에, 나의 진실이 올바른 사고의 복원을 이루어내기를 바랐던 나날이다.
명징한 의식이 가열차기를 나는 얼마나 염원했던가.
다시 봄이올 것을 믿으니, 추운 세월 견뎌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렇건만 지금 내 마음은 이 봄빛과는 무관하지 않은가.
도시는 캄캄하다.
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귀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둠이 좋을 때도 있구나.
모든 고통을 다 덮어버렸어.
저 어둠속 어디에 세속의 암담함이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