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소리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慧圓 2010. 6. 10. 12:19

 

 

 

 

수학여행 간 주니,  엄마랑 노는게 더 재밌다는 전화에

월매나 가슴 뛰고 고맙고 뭉클하던지.(하긴 이넘은 기분좋게 하는 방법을 아니까.)

네 여행에 맞춰 에미 동탄 출장왔다 했더니

"밤에 올수 있어?" 그런다.

아~~~우리의 영원한 사랑이여~~

그러나 안타까운 현실은 부모입장 사양과

현장스케줄에 눈물을 머금고 쓰린 가슴 부여안으며 귀환.

 

 

 

 

 

이번엔 이소장과 동행.

이소장을 처음 본게 2003년 장유현장서 였지 아마.

지하3층 지상11층의 근.생 건립 하였을 때 였던거 같다.

두 세살 어린데도 훤한 백발이라 쉰노인 인줄 알았었지.

참으로 많이도 싸웠고, 웃었고, 또 싸움에 화해, 배려, 도움에,

현장에서 지지고 볶은 세월이 어언 8년지기가 되었다. 

 

첫만남이 지워지지 않는게 내  타이어 펑크땜 점심도 거르고

장유 IC로 한달음에 달려와 기름 묻혀가며 교체해주던 일.

현장에서도 제 몸 아끼지 않고 직접 삽질까지 하는걸 보고

소장님이 참...하고 괜찮게 보았더랬는데,

왠걸..한성격 하는지라 치를 떨었던게 한두번이 아니었지.

 

 

싸우면서 정드는가...

친화력은 언제나시간과 함께 동행해 오는 손님인가.

권위란 뭘까..그건 역사겠지. 긴 시간이 베풀어주는 영광의 자리...

이소장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

여행을 좋아하고 역사를 사랑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생각해보니 울 아그들에게도 직접 띄울수 있는 행글라이드를 만들어 주곤 했었네.

그러고 보니 뽀글이 라면도 사사 받았구먼.

오면서 심통만 아니었음 법주사든 직지사든 같이 보고 와도 좋았을텐데

아쉽다며 "저 거머리를 왜 붙였지?.." 

뒤에 자는줄 알았던  심통. "너네들이 이렇게 샐까봐 따라붙었다!!" 소리에 박장대소.

 

사람은 누구든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찾는다.

지나간 세월을 반추해보며 이소장이나 심부장이나 나 역시

돌이켜 보는 시간속의 흔적들을 얘기하며 오는 내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