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준아

慧圓 2015. 9. 17. 23:41

 

 

준아

작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취침해야 한다는 어제 네 전화를 받고 오늘 시간이 지나도 네게 연락이 없어 에미의 불안은 증폭됐었다.

겨우 저녁 여덟시가 넘어 네 목소리를 듣고나서야 다소 한시름 놓을수 있었는데,

'그러게 왜 그런 곳에 가서 이 에미를 힘들게 하느냐'는 소리에 "미안해요"란 네 말도 안쓰럽고.

'형아처럼 좀 편한 곳에 가지 그랬냐'는 에미의 철없는 말에도 "엄마 거긴 군대도 아니야~" 란 네 농이 결코 우습지만은 않은 사실.

기실 엄마가 입버릇처럼 광고하는 -아마 형아보다 더 떠벌렸을걸- 세월호 시체 50구 인양이 보통 일이냐. 

네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 대해 오죽하면... 또 그런 생각이 들잖니.

 

남자가 군대를 간다는 것은 그 할례를 겪지 않고서는 사회에 입문할 수 없다는 상실과 보상의 수레바퀴를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엄마 시대에도 불행과 좌절에의 경험 없이는 누구도 그 과정을 넘어가는 일을 꿈꾸지 못했다.

규칙적인 군대 생활은 자신을 버리는 척박한 영혼을 가지는 곳이라는 것을, 보내는 우리나 떠나는 젊은 친구들이나 가졌었던 견고한 일반적인 상식이었지.

그후 제대한 사람들의 상징인 전설같은 소문과 악악거리는 추억들만 난무할 뿐이었는데.

 

네가 이제 그곳에서 겪어야 할 생활은, 아니 보이는 것이라곤 산과 또 앞산과 뒷산, 들판 심지어 철책로만 곁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네가 자란 주거 환경인 굵은 붓으로 하늘 아래에 그려댄 하나의 선, 집창으로 보이던 수평선의 바다였을 터인데, 이제야 넌 비로소 '아 그동안 내가 바다만을 보며 자랐구나' 하고 깨달았겠지.

이제껏 너의 의식 속에서 자란 바다는 자유와 단순함의 극치로써 우리에게 자유로운 방임만 가르치진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다른 눈을 가져야 한단다.

우리가 바다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한 일상이 그곳에선 산에서 해가 뜨고 산으로 해가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산에서 뜨는 해와 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산다는 삶과 도시 혹은 들판에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해 가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그걸 알때쯤 넌 완전한 군인이 돼 있으리라.  우리가 부르는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라는.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에는 이런 구절도 있긴 한데,

"들판에서 모든 것은 비극으로 끝나고 사랑과 행복이 싹튼 곳은 산이었더라" 하지만 이것과는 비켜서서 엄마는

'산은 너의 정서가 기대고 파묻힐 언덕이며, 들판은 네가 얻어야 할 지식의 발판이 되어야 하며, 철책로는 네 채찍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마.

사랑한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