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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후 갬

날씨는 종일 아니 연일 흐렸다.결국 습기 먹은 바람이 토해내듯 비를 뿌리기 시작하더니 삼일 내내 장마 모드로 전환했다.오랜만에 계획한 나들이를 무산하게 한 빗소리만이 이불깃을 스치듯 배갯머리에 와 부서진다.미티겠네.저놈의 빗소리라도 안 들렸으면....마음 바닥을 그냥 긁어대는구나.여기 바람은 유독 심해 하늘과 땅이 그냥 맷돌질을 해버려야지 할 만큼 으르렁거린다. 마당의 배추는 춤을 추고 그 사이 비집고 자리 잡은 잡초조차 어여삐 보여 나 홀로 여행을 감행했건만, 이렇게 비바람이 치는데야...지치고 고단한 마음을 더욱 처연하게 만들게 뻔한, 그동안 갇혀 있었던 고절감만 더할 것 같아 주저앉는다.어디선가 발정 난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무산된 마음에 그 소리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을 어지럽히고.. 구름..

나의소리 2026.10.27

어떤 날

그 습기 찬 푸르름 속으로 작열했던 여름은 떠나가고 수직으로 내리꽂던 태양도 꼬리를 내릴 때,Y가 집에 왔다 술시(酒時)에."아직도 못 끊냐? ㅉㅉ"---나 술 사준 적 있어?하라고 해서 될 일이 따로 있지. 남이 누란다고 똥 누겠냐. 내 술은 내가 알아서 마심."내세울 게 없어서 술 자랑도 자랑이라고."---저 떨어지는 해 좀 봐. 오늘 같은 날은 멀쩡한 년도 바람나고 싶겠구만.저건 아예 가슴을 후벼 파자는 노릇이지. 이런 날 술이 없으면 어쩔 뻔했어.하늘도 바다도 저리 다홍이고 치마 속에 바람이 술렁술렁하는데...난들 어쩔 수 있냐 말이지. 바다빛이 저렇게 사람의 애틋한 데를 파고드는 이 시점에 나라도 안 마시면 누가 마신다든. 귀엽고 아름다운 영화 를 보면서"나이 든 암탉은 국물맛이 좋다""..

무제 2026.10.14

체면 구긴 처서

24 절기 중 가장 좋아한 처서가 꼴이 영 말이 아니다.주위에서 찜통이니, 폭염이니 했어도 처서가 오면 끝이야~ 호언장담했던 내 꼴도 마찬가지.화분에 심어놓으면 들풀도 다 화초라고 한다는 말도 있는데, 지금 난 딱, 벌레 먹은 잎 꼴이다.  처서야그래도 너 있어서 이런저런 일들 참 많았구나.올여름처럼 살다 보니, 시어미 죽는 날도 있다던데 하는 탄식조차 나오더라 그거지.그만 뜨거워도 될 텐데...                                                             절기도 이렇게 못 지키며 변죽을 하는데 사람 마음이야ㅠ평생 살아도 임의 속은 모른다고 허잖어. 헌데, 이거야 임의 속은커녕 내 속도 내가 몰라. 이 뜨겁게 달군 땅을 네가 어찌할 수 없듯이 나도 앞일이 어..

무제 202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