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욜
어제 사무실 앞 해변에서 도서 바겐세일을 했다
이만큼 구입 했는데도 삼만원이 넘질 않는다
횡재한 기분으로 위장까지 뿌듯하다
유흥준의 문화답사기를 들고 읽다가 자불다가..하는데 양 아치 전화.
"마트 가자~"
그래, 바람이나 쐬지..하며 덜렁덜렁 반팔 차림에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바람이 차다.
"안돼, 덧옷 입고 나와!"
---괜찮아, 마트는 안추운데 뭘.
"무슨 마트?..밭에 가자고 했는데?.." ??? 크흐~~
---... 싫어, 안가, 마트가자~~
"안돼! 윗 옷 입고 나와 어서!"
친구는 강경하다.
밭에 꼭 데리고 갈 모양이다.
할수없이 포기하고 억지로 나서니,
어느새 밭에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온 여린 채소들이 빼곡히 있다.
솎아주라 해서 딴에 열심히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니, 어떻게 하노?... 어찌 하길래 이리 뻥 뚫어 놓지?"
나의 솎아 논 자리는 내가 보기에도 영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듬성듬성, 시삼촌 벌초해 놓은 듯 탈모현상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안 거지만 채소 한줄기에 한 잎 두 잎 띄워 떼어내란 것을 한 뿌리 두 뿌리 건너 아예 뽑아 버렸던 것.
친구는 기가 차는지 아예 할 말을 잃고 열무나 뽑으란다.
오호, 뿌리째 뽑는거라면 나의 전문이지.
비료를 안줘서 저만한 크기인데도 잎이 누렇고 줄기가 뻣뻣하다.
---열무 자리에 또 뭘 심지?...양파 심을까?
"잉간아, 양파는 지금 뽑고도 남을 시기가 지났거든. ㅉㅉ 널 엇다 쓰냐."
---흠~ 그럼 고추 심자. 태양초 맹글지 뭐.
"니가 다 해라. 난 인자 니하고 밭농사 동업 안할끼다. 입만 가진놈이.."
부녀회장 열받았군.
무슨 일이든 속사포처럼 하기 좋아하는 내게 안성마춤인 송두리채 뽑는 일.
오 분도 안돼 여린 열무는 뽑히고, 다음 청경채도 뽑고, 한가득 상치를 싣고 지훈네로 간다.
두 사람은 돋자리 펴놓고 채소를 다듬으며 그 사이 물 마시러 간 나를 두고 안주 삼아 킬킬 대고 있다.
"내 참, 상추를 그렇게 뽑고 있어. 밑둥이를 뽑질 않나..."
"내가 머랬어..창준엄마 솜씨라니까...ㅎㅎㅎ"
*일욜.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는데...이게 뭐더라..
비에냐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클래식에 문외한인 내가 베토벤 다음으로 유일무이하게 아는 곡이다.
언젠가 즐겨 봤던 만화에서도 이곡의 소재로 주인공을 그려냈던, 그 화려한 현의 요정들.
여고 시절 풋사랑의 대상, 그 분을 따라 좋아했던 곡이었지.
차거운 겨울 하늘의 어느 한 모퉁이를 실처럼 뽑아내어 펼쳐 주는 듯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창밖으로 눈을 준채 앉아 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준아~~커피 한잔!~~
"커피 먹는거 몸에 안 좋아~" (아침 으슬으슬 한기가 든게 감기가 왔나 그랬더니..)
---끓으면 연락 주기 바래. 난 작은아들 무지무지 좋아하거든.
"마음 설레게 하지마"
잠시 주니 방에서 음악소리가 멎으며, 에미 방으로 건너온다.
"감기 다 나았어?"
---감기여, 안녕이야.
꼭 보호자 같이 에미의 이마에 손을 짚어보는 주니,
"흐음..열은 없군" 헐~
봄 날의 일요일.
햇살이 엷고 엷은 결을 이루며 마루에 내려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