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소리

상처. 치유. 희망

慧圓 2021. 3. 13. 16:19

 

 

새벽에 눈을 떠 집을 나오기까지 내 시간은 몇 가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갑니다.

두 과목의 사경을 하고, 준이 조반이나 야참을 위한 요리 후 잠깐 명상을 하고 나서 -멍 때리는 아련한 현실, 어쩌면 이 시간이 요즈음의 나에게 가장 빛나는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 현장으로 출발하며 밤새 탁해진 공기를 가느라 차 창문을 여는 것이 하루의 시작을 연다고 할까요.

 

 

 

요즈음 현장이 기장군 정관이라 이른 아침의 그 고속도로에는 부산 시립 장례터인 영락공원이 초입부에 있어 가끔 한두 대의 장의차를 만나곤 합니다.

영정을 든 사람이 까만 리무진의 앞에 서고, 뒤따르는 대형 장의차에는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타고 있고, 뒤에는 희디흰 조화가 있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겨울의 헐벗은 산하에 내리비추는 투명한 아침 햇살을 가르며 달려가는 장의차를 바라봅니다.

상여를 만날 때마다 아득한 생각으로 가변길에 잠시 정차를 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난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저 영원이라는 기나긴 세월 속에 내가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 무섭고 서러웠습니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가. 이 춥고 이른 아침에 어느 곳으로 묻히려 가는가. 이제 돌아가는 건가.

이 '돌아가는 길' 얼마나 의미가 있는 말인가.

우리가 부모님이나 집안의 어른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하지 않는가.

묻히러 가는 길, 돌아가는 길..... 다른 세상으로, 다른 나라로 돌아가는.

이땅에서의 힘들고 어렵고 가슴 찢기며 살았던 나날을 마감하고 다른 세상으로 돌아가는구나.

긴 인생, 어려운 일은 또 얼마였으며 서글픈 일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한 움큼의 기쁨에 마음 가득했던 날은 며칠이었을까.

내일 일지 열흘 일지 아니 한 달 몇 년이 될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묻힐 무덤에도 꽃은 피겠지. 

그런데 정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거기 누워 있겠구나.

저 사람의 무덤에도 봄이 오면 이름 모를 꽃은 필테고, 저 상여 위의 사람은 이제부터 아무것도 모른 채 그 흙 속에 누워 있겠구나.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날까. 저세상에서.

슬픈 일도 없이 다 잊고 편안할까. 저 나라에서.

태어나 살았고 마지막 가는 길 더불어 갈 자식도 친구도 두고, 그리고 떠나면 되는 길.

겨울 이른 아침이어서 좋구나.

햇살조차 건드리면 소리가 날듯이 맑아서 좋구나. 편하게 가소서.

그 장의차를 바라보면서 아주 마음 따뜻하게 우리 길자를 그렇게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겨울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눈시울이 벌게져 계속 ET눈을 하고 다니는 저를 위로한답시고 아는 동생들이 나들이 때 꼭 저를 데려가 줍니다.

저는 어디든 두말 않고 따라나섭니다.

그래도 예닐곱이나 어린 친구들이 저를 낑가주는 게 어딥니까.

겨울바다는 시작도 끝도 없는 이어짐 속에서 저 영원으로 한낱 점 하나가 되어 사라지는 파도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비로소 나는 나의 자신이 알에서 깨어나는 부나비처럼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 됩니다.

나의 이 하루하루는 저 영원의 물결 속에서 자신이 부서질지도 모르는 파도가 거침없이 바위를 향해 부딪히는 저 한 움큼의 시간이 아닐까.

바닷물을 두 손으로 퍼올리며 나의 한 모금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파도와 바윗돌의 작은 만남이 금빛으로 반짝입니다.

내 하루의 시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오늘 이 시간이 빛나는 까닭을 당신은 아시겠습니까?

 

 

 

 

겨울을 보내는 길목에 금정산 산행을 했습니다.

아침 9시에 출발하여 대략 10킬로 만 이천보를 다섯 시간 걸었나 봅니다.

동행인 중, 팔순에 가까운 지인의 장모님도 계셨는데 저보다 훨씬 걸음이 가벼우심에 아연함과 존경을 함께 했더랬습니다.

나의 지인은 동생뻘로, 젊었을 때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접니다.

이 친구도 거의 산악인 수준이라... 멀쩡한 저만 헉헉거리며 꽁지만 따라가는 꼴이라니 이처럼 우스꽝스러울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산은 우리를 포근하게 안아줍니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주었고 어느새 3월 초인데도 풀이 돋고 있었습니다.

그 잡초로 인해서 이 봄은 이제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이 아니라 기다려서 오는 봄, 마음 설레며 기다렸던 봄이 되어 있었습니다.

경사진 곳을 오를 때 일행에게 밀리지 않으려 진땀 흘리는데 다리가 후덜 거릴 정도로 걸음이 떼어지질 않아 잠시 숨을 고릅니다.

그런데 제 발밑으로 이름도 모를 꽃나무 하나가 새 싹을 내고 있습니다.

작은 꽃나무 하나가 나에게 주는 희망입니다.

 

옆으로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도 한 마디씩 합니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가면 돼요" "몇 걸음 안 남았어요~"

모두가 저런 말에 현혹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런 하얀 거짓말에 웃음 지으며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 말을 믿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이 힘겨운 한걸음 한걸음을 뗄 수 있을까요.

그래... 몇 발자국만 더 걸으면 끝이야. 다 왔어... 한걸음만 또 한 걸음만 더 가면.

희망이란 크고 엄청난 것들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작고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조차 않는 숨겨진 것들 인지도 모릅니다.

어찌 크고 엄청난 것만이 희망이겠습니까.

작으나 소중한 희망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결국은 더 커다란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작은 꽃나무 하나가 꽃망울을 맺으며 시작될 올해의 내 봄날은 그것으로 해서 더 크고 엄청난 희망으로 울울하게 자랄 것을 믿고 싶습니다.

희망이란 그것을 아끼고 키워 올리는 사람에게는 넝쿨처럼 자라 올라서..... 벽을 뒤덮는 담쟁이처럼 삶을 견고하게 하고 더 높고 드넓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희망이라는 것이 그렇게 멀리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기다릴 것은 그렇게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닐 듯이.

기다릴 것이 있을 때 그것이 희망이었다고 해도 좋겠지요.

기다릴 것이 없는 하루하루 그것은 절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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