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영암사 삼층석탑

慧圓 2011. 3. 31. 19:46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평원에 솟아 있는 탑이나 유적은 늘 감동적이고 자연과의 일체감으로 행복하게 만든다.

탑을 바라보며 우리의 정체성과 뿌리를 생각해본다.

어릴 때 화제를 일으켰던 <뿌리>라는 소설도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 조상이 대대로 이어온 그들 가계의 내력을 구전하여

자손이 그 뿌리를 더듬어가는 , 그들의 자기 정체성 찾기가 아니었던가.

백인들에게 받는 비인간적 대우에 동정심을 갖었지만 여전히 '뿌리'라는 단어는 추상으로 여겨졌었다.

우리 조상들이 문화재와 유물을 지키려 함은 바로 이 뿌리정신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근원이 되기에, 지키고저 숨기고 막고 저항하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리라.

뿌리의 계승을 위하여.

 

 

 

 

 

이리저리 각도와 빛을 따라 담아보고 잠시 바위에 앉아 쉬어 보는데 바람 소린지 물소린지 불현듯 귓가에 밀려온다.

산을 휘도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보니 내 혼을 어디론가 이끄는 듯하다.

가까이에서가 아니라 먼 태고로부터 실려오는 듯한 소리, 우리가 태어난 근원, 우리가 돌아갈 근원의 땅에서 불어오는 소리 같다.

자연이 가르쳐주는 근원, 자연은 본능적으로 그것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있는지도.

향기를 찾아 본다.

문득 그 실체를 깨닫는다. 옛 시대의 위용과 화려함.

 

 

 

 

 

 

 

 

 

탑 주위를 돌며 걷다 탑너머로 솟은 산세를 보며 미소 짓는다.

절터 군데군데에는 풀이 돋기 시작했고 초록 풀을  비집고 이름모를 들꽃이 듬성듬성 솟아있다.

바람이 부니 까까머리에 돋아난 풀들이 파르르 물결이 인다.

어떤 사심도 구속감도 없으며 순수 자체인 생명들이 우주의 자유를 합장하는 듯하다. 

 

 

 

동자승쯤인가.

얼굴 형상이 없는 자그만 불상만이 묵묵히 탑을 지키듯 처연하게 있다.

환상과 영감의 샘물인 옛터의 유물등과의 조우는 나에게 행운이며 정신의 고향을 갖게 되었으므로 한 자연인으로서도 행복한 일이다.

누구와의 만남이 내 인생에서 필연이었는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탑의 만남은 필연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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