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하게 수직으로 내려 꽂히던 태양은 대구 달성쯤에 와서야 물기를 잔뜩 먹은 구름에 의해
사라져 버린 은막의 여배우처럼 숨어버렸다.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에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분명하게 구분 되어지는 대지.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와 태양열에 이글거리는 도로의 경계선을 지나며
요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칙칙한 가슴 한쪽과 마른잎 타는듯한 자신의 마음이 영락없다.
하늘로 치솟은 전나무 숲이 그나마 한켠을 시원하게 해준다.
왼무릎을 세워 공양하고 있는 보살상과 전혀 조화롭지 않은, 팔각구층석탑이 전나무를 닮은 듯 우뚝 서있다.
한 겨울 부는 바람에 몸을 떠는 석탑에서 저 수 없이 달려 있는 풍경소리를 문득 듣고 싶어진다.
적광전. 오대산의 고요함이 이곳에서 비롯되었는가.
진리의 빛이 가득한 세계라는 뜻의 대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