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후 타설로 정신줄 놓는 요즘.
현장 다량으로 두 세 군데 돌다 보면 하루가 거의 다 가버린다.
일주일을 돌아도 한번 씩 밖에 얼굴 도장을 찍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결재는 쌓여만 가고 견적 작업은 밀리고 업체 관리, 사장들과의 교류도 소원해진다.
현장의 규모가 크든 작든 관리 시스템은 별 차이 없이 setting해야 하는 실정에 선투입비도 만만치 않지만
형틀 인원 수급의 난조와 임금 인상등 피폐해진 몸과 마음은 우기의 올 여름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다 두 현장에서 팀장의 노무비 사고까지 터져 죽어라 죽어라 하는군 싶다가
슬슬 스트레스가 뻗쳐 오기로 <그래, 아무리 죽여봐라 내가 넘어가나. 악재여 올테면 오라!>
이불속에서 악을 쓰고 만다.
기질의 근성으로 이젠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넘기는 날엔 언제 틈새로 비집고 올. 악재의 요동이 기다려져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카타르시스를 즐길 정도이다.
사람들에 대한 실망으로 자신의 위안을 삼는 요즘.
차창에 머리를 기대 본다.
파도 소리는 다가와 나의 머리 밖에 있다. 잠이 드는 나를 지켜주듯.
바다는 늘 푸르게 있지.
때로는 암청색으로 때로는 은회색으로.
새벽의 바다와 하오의 바다가 다른 색으로 그 가슴을 드러낸다는 것을 배웠었다.
파도 소리가 언제나 한결같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잔 물결 위로 물새와 갈매기들이 떼 지어 날아 간다.
비 오는 다음 날 푸르게 개어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떠올랐다가
저녁이면 핏빛 황혼 속에서 저물어가는 바다는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다가오는 시간을 조금씩 두려워하며 또 기다리면서 나그네 길 같은 하루하루를 산다.
먼 출행길 나선 어제 오늘.
바람이 분다.
비가 온다.
젖은 몸 떠는 저 산하는 날 보며 손짓 하는데..
황무지로 마른 내 가슴은 마주 할 기력도 없는데..
깨벗고 오라고 손짓을 한다.
어느덧
바람에, 비에, 취하는 향무지는 홀딱 벗은 마음으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