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소리

지치다

慧圓 2011. 1. 14. 21:00

 

싸아하게 차가운 공기가 몸을 스치며 다가온다.

수정처럼...그렇게 말해야 할까.

아주 단단한 질감이 느껴지면서 투명하게 빛나는 것 같은 공기가 감싸왔다.

차고 정갈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머리칼을 날린다.

 

가장 길었던 이번 출장에 몸도 마음도 정신도 지쳐 저리 맑은하늘을 보니 서러움이 무럭무럭.

간밤 숙취에다 나만 냅두고 더구나 차까지 업체사장들에게 하이재킹 당한 터라 짜발이 있는대로 난 상태.

 

그러나 거리에는 은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열차를 타 보는 게 얼마 만인가.

 

 

 

 

영혼을 빨아널고 싶은 기분이 종종 들 때가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스스로의 삶이 왜 이렇게 척박하고 마르게 느껴지는지.

 

인간들에 회의감이 들어,

그래, 저 깊은 산중 방한칸 지어 하늘을 보고 별을 헤아리고 달빛에 책을 읽을수만 있다면..무엇을 더 바라랴.

때묻어서 남루하게 너덜거리는 것만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수없이 묻는다.

아무 확신이 없다.

무엇이 나를 여기서 건너줄 수 있는가...

어떠한 심정으로...여기까지 왔던가...

 

 

 

 

우리들이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무엇을 사는 걸까.

시간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시간을 사는 것일지도.

젊음의 시절엔 어설픔과 눈뜸, 도전, 마흔에 맞이하는 성숙함 그리고 그만큼의 실의...

그것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아니면 장소일까. 이 공간을 살아가는 것일까.

도시에 살고, 길잃은 사람들이 널려 있는 것만 같은,

모두가 갓 상경한 사람들만 있는것 같은 기차역사, 아무도 외롭지 않아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 

그렇게 살아 가는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아마 우리들이 살아가는 건 사람을 사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사람을,

때로는 멀고 때로는 내 안에 있는 부모를,

늘 거기 있을 것만 같은 형제를,

어느 날 흘러간 팝송을 들려주는 음악방송에서 친구와 함께 듣던 음악이 흘려나올 때면

한순간 마음의 언저리에서 풍경이 울리듯 잠깐의 떨림이 스치고 가며 떠오르는,

이민가는 친구를 배웅했던 김포에서 친구의 남친에게 고백을 받았던,

이제는 헤어져 소식도 모르는 그를,

늙어 가는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식을,

그렇게 우리들은 사람을 사는 것은 아닐까.

어떤 배반도 치욕도 그리고 영광도 결국은 사람으로부터 그렇게 다가오는 것을.

 

그래. 우리는 사람을 사는 건지도 몰라.

결국은 나를 사는 거겠지. 나 자신. 

스스로를 이세상에서 쓰고 가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결국 나 자신을 자식으로 친구로 연인으로 어머니로 선배로

그리고 세상에서 불러주는 그 어떤 이름으로...

그렇게 쓰고 살아가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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