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운산
'구름을 오른다'는 이름답지 않게 야트막하고 계곡에 물도 없지만 신라시대의 명찰을 품고 있어 아름다운가.
솔향기, 알싸한 바람 냄새, 빈 가지에 몸을 터는 정갈한 바람 소리, 섬세하게 모공을 파고드는 바람의 촉감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숨을 크게 한번 쉬어 보는데,
흐흥~..마사토를 깔아놓아 회오리같은 모래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휘몰아친다..ㅠㅠ
소나무 향을 마시며 길을 따라 올라가면 멀리 일주문(조계문이라는 편액을 걸고 있음)이 무거운 지붕을 받친 채 모습을 드러낸다.
일주문 앞을 지나서 곧바로 천왕문의 사천왕이 눈을 부라리고.
가운루가 고운사의 얼굴인양 홀연히 솟아오르는 듯하다.
정면5간, 측면3간의 규모로 제법 크고 호방하다.
검은 고동색 나무 빛깔을 그대로 드러낸 채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앉은 가운루의 누하 기둥은 길이가 제각각인데.
여름이면 물길에 서있을 기둥은 긴 돌 초석 위에 서 있고 나머지 기둥들도 계곡 바닥의 높낮이에 맞춰져 있다.
계곡 바닥 가장 낮은 곳 암반에 돌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다시 나무기둥ㅇ르 세우고 마루를 놓은 이 누각의
시각적 리듬감을 좇노라니 마치 가운루가 구름을 따라 춤을 추는 듯했다.
자연과 인간이 공명하는 자연주의 미학이랄까.
가운루의 입지가 고운사의 가람배치를 이해하는 열쇠인 것 같다.
우화루. '비꽃'이라는 얘기인데 부처님께 올리는 꽃공양이란 의미.
고운 최치원으로 하여 이름조차 고운사인가.
창건 때의 이름은 고운사高雲寺 였다 한다.
학습에서 배웠던 삼국사기의 '최치원전'에는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느낀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52세 이후 종적을 감췄다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자유로운 생활로 일생을 마쳤다 하고 전설에는 신선이 되었다 한다.
인터넷 검색에는 등운산 고운사는 '구름을 오르는 산'이라 하니 '외로이 떠 있는 구름 같은 절'이라는 말이겠지.
고운사로 가는 길에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최치원의 호가 바로 고운(孤雲)임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안내서에 보면 그가 이 절에 머물면서 가운루와 우화루라는 두 개의 누각을 세웠으며 그 후부터 高雲寺라
불리던 절 이름의 한자를 바꿔 孤雲寺라 했다는 기록이다.
시적인 이름.
이곳에서 나는 시를 느낀다.
눈을 감고 바람의 결에 몸을 맡기는 편이 더 좋을 듯 하다.
'침묵의 공간'
단순한 '말 없음'이 아닌 침묵. 그것을 적묵(寂默)이라 하나.
'사악한 생각이 없다(思無邪)'는 공자의 한마디가 생각나는 곳이 고운사 이다.
하늘은 청명하고 구름은 온갖 그림을 그려 놓는데 경내의 중정은 바람만 일고 있다.
을씨년스런 바람은 산사의 적막을 더욱 농밀하게 한다.
내가 바라고 좋아하는 트임의 공간은 없었지만
한동안 잊어버렸던 '안온'이 거기에 있었다.
팔작지붕의 대웅전은 1992년에 새롭게 지어져서인지 고찰다운 맛은 없지만 웅장한 자태를 느낄 수 있다.
대웅전을 비켜선 아래에 보물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모신 약사전이다.
이 전각 안에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춘 이 좌상은 단정한 사각형 얼굴에 이목구비가 비교적 작게 표현되어
오히려 근엄한 인상을 주고 각진 어깨와 발달된 가슴은 당당함을 느끼게 한다,
머리, 옷주름의 특징이 확실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화려한 모습의 연수전.
오래된 벽화가 시선을 잡는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글귀가 떠오른다.
"진정한 여행자는 떠나지 않고도 자유롭다."
끝없는 변화와 부대낌 가운데서도 부동심을 지켜나가는 것이 자유의 궁극이라는 말이겠지.
언제 어디서든 걸림이 없는 경지이기도 하겠고.
그래서 출가수행자를 일러 운수(雲水)라 하는가 보다.
입구 휴게실에서 본 주지스님의 말씀중.
"절이 관광지가 되어선 안됩니다. 절은 수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오래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