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조계산 계류가 굽이치는 지점,
여러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선 조계산 서쪽 언덕 넓은터에 길게 누운 송광사.
미진한 문제들을 안고 출발하여서인지, 무거운 마음과 복잡한 머릿속.
그러나 기분과는 달리 다리위에 정자같이 세워진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청량각,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가라는 의미인가.
특이하게 다리 위에 세워진 청량각 아래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계곡의 바람이 순례자의 땀을 씻어준다.
청량각을 지나 평평한 산길을 계속 오르면 길 오른쪽으로 비림이 눈길을 끈다.
송광사 역대 고승 및 공덕주들의 비석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 서서 두 손을 모으면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불심을 닦았던,
그래서 승보종찰이라고 하는가 보다.
곧이어 일주문이 고개를 내밀고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자그마한 전각 두 채가 나란히 앉아 순례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세월각과 척주각이라는 전각인데 죽은자의 혼을 실은 가마인 영가가 속세의 때를 씻는 곳이라 한다.
설명문을 보니, 부처님 앞에 나서기 전에
남자의 영가는 척주각에서 여자의 영가는 세월각에서 각각 속세의 더러움을 씻고 목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목욕을 했다고 금방 부처님을 뵐 수는 없는 일.
속세에 남아 있는 마음을 또 한 번 깨끗이 씻어 내려보내야 하는데,
그곳이 불일폭포가 쏟아지는 계류위에 놓여 있는 무지개 다리, 우화각이다.
거울 같은 물 위에 우화각이 거꾸로 비치는 모습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불국으로 향하는 선승의 마음을 닮았다고 한다.
송광사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하는 우화각에는 예로부터 이 절을 거쳐간 명인들의 한시가 많이 걸려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맑은물위의 우화각이 내겐 그리 썩 이쁜 그림으로 연출되진 않았지만
무지개다리 위로 놓여 있는 정경은 충분히 시선을 끌만했다.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 극락세계에 가고 싶다는 의미 였을까.
우화각을 건너면 부처님의 세계인 절 마당에 들어선다.
우화각을 건너 이어지는 천왕문과 종고루를 지나야만 비로소 부처님이 계신 절 마당에 다다르게 되는데,
절 마당에 들어서니 비를 맞지 않고도 가람을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큼 각 전각 지붕의 귀가 맞대어 있었다는
웅장한 옛 가람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대웅전 위쪽에 스님들의 요사체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
대찰치고는 왜소해 보이는 대웅전 뒤 돌담 위로 여러 전각들을 배치한 것은
승보사찰로서의 성격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부분인것 같다.
송광사의 정신이 집결된 곳이라고 하는 국사전은 일반 출입금지.
화재때 국사전만 화를 피했는데 이는 고승들의 법력에 의한 것이라고 믿을 정도로
송광사 스님들이 중히 여기는 건물이라고.
불법보다도 부처님보다도 스님이 존중되는 이 절을 숨은그림 찾듯 꼼꼼히 살펴보면
여러 곳에서 승보사찰로서의 특징을 찾아보는, 또 다른 순례의 즐거움이다.
그래서인지 다른곳에서 오신 스님들이 꽤 있었다.
마음은 조급하고 보고 싶은곳은 빨리 찾아지지 않아 승복차림의 스님들에게 여쭤보려 다가서면
거의 타사찰에서 오신 분들이라 그네들도 모르시겠단다.
관음사의 화려한 단청 내부.
전각내에서의 사진은 잘 찍지 않지만, 또 이날 따라 폰카의 밧데리도 날라갔고
디카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화질이라 사용을 잘 안하지만
천정의 화려함이 셔트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쫓아오는 것도 없으면서 마음은 조급하게 <선암사>로 옮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