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일지

시공 간담회

慧圓 2011. 3. 22. 18:50

***산업센터 시공 준비 간담회 22일 오후 2시 DO 5층 대회의실.

드디어 시작인가.

그러나 이미 반틈 비워 놓은 마음은 썰물이 빠져나가듯 텅 비어 있었다.

춥고 긴 겨울은 지났지만 기다리던 프로젝트가 이제 시작인데 나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다

직업에도 조울증이 있나 싶게 요즘 마음이 꼭 그렇다.

자꾸 마음이 기우나. 오라 한다고 잡힐 마음은 아니다.

구멍은 깍을수록 커지는 법, 처음부터 잘못된 일을 가지고 연연할 일이 아니지.

힘들 때 마다 다짐하던 마음은 있었다.

어떻게든 지나가겠지. 시간이 소금처럼 입에 씹히리라.

바람은 다름없이 불고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보름이 가까워오면 어김없이 달은 둥글어지리라.

내가 공사에 빠진다 해도 누구도, 그 무엇도 아랑곳 없이 아침은 오고 저녁은 어두워지리라.

내게는 힘든 결정이었지만 강물에 돌멩이 하나 던져진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내가 지금 견딜 수 없는 건 승부에 마음을 비운다는 그거야.

 

맹자의 진심장구가 떠오른다.

생도 내가 구하는 바요, 의도 내가 구하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다 겸할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생을 버리고 의를 찾겠다.

그 혼탁했던 시대에 정의와 도덕을 위해 자신의 기개를 굽히지 않앗던 맹자가 생각이 난 건.

오늘처럼 환란한 내마음에, 맹자의 가르침이 귀감이 되어서다.

승부를 가지고 도전 할 것이냐, 과욕을 버리고 정도를 지키느냐.

두가지를 놓고 보았을 때 길은 하나지만 나의 자존이 자신을 못살게군다.

 

좀 이르다 싶었어도 아예 점심을 원청에서 먹자 싶어 나섰다.

이소장과 허대리와 식사후 내려오니 업체사장님들 하나 둘 들어온다.

시행 시공이 공동이라 두 원청회사의 계열 업체들이 모이니 두배가 넘는 인원수다.

먼저 우리쪽 원청의 사람들이 모여 들고, 더러 처음 보는 사람들은 상대측 원청이다. 

비단옷 입고 장맛비 맞는 업체가  한둘이 아니겠군 라는 시선으로 관조 하며 일단 체크 해본다.

저쪽도 만만찮은 무리들이라 알게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이 떠도는 가운데 우리의 입담꾼들이 모여 있는 메인 업체들.

유유상종이라...한자리에 몰려 일단 사전 탐색과 잡담.

 

사설 좋은거야 다 아는 사실에 게다가 풍도 칠 줄 아는 이사장.

꼭 흉년에 밥 빌어먹게 생긴 오종종한 모습의, 냉수 먹다가 이 부러지는 소릴 잘하는 전기 사장,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같이 쌀쌀 잘도 돌아다니면서. 사단 났다 하면 들기름 바른 사람처럼 잘도 빠져 나가는 김사장.

마음 쓰는 건 생지 옥양목 같아서 누가 술먹자 하면 그저 졸면서도 앉아 있던 설비 박사장,

내 황희 정승 그림자도 못 봤지만 이것도 말 된다, 저것도 말 된다 하는 황희 정승같은 유사장,

오나라가 망하든 초나라가 망하든 알 바 없는 듯 한, 그래도 목마르면 우물 팔것 같은 하사장,

성질만 급했지 말도 조리 있게 못하면서 저 양반은 밤새 울다가 이게 누구 장사냐고 할 것 같은 심사장,

말 잘하는이 변호사 되고 말 못 하는이 똥짐 지는 세상도 지났건만, 어디 세상에 입 없어서 말 못 하고  사는 사람 있다던가 싶게

모두 걸쭉한 농으로 한껏 이쪽의 분위기는 상승세를 탄다.

 

회의가 시작됏다.

오너의 주재로 사회는 이소장이 맡았는데, 잠시 회의전 나눳던 대화가 떠올라 무언가 부글거리는 속이 편치가 않다.

"난들 모여라 헤쳐라 하고 싶어서 합니까. 시키니까 하는 일인데 협조 해야죠."

동탄업체들 개의치 않는다는 이소장의 언질에-물론 그런 대우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무리 도랑 건너면 지팡이  버린다지만 일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뭔가 조작이 우굴거리는거 같은 분명치 않음에 화가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엉뚱한 생각으로 설명이 제대로 들어오질 않는다.

심란한데 이소장이나 잡고 환란의 바다로 같이 자빠져?

논개가 따로 있다더냐. 끌어안고 심해로 떨아지면 그게 논개지.

아니다. 세월이 다르고 입장도 다르다.

논개 언니가 지금 태어났어 봐라. 진주 남강이 아니지.논개 언니야 노는 물이 다르니까 .

세월아, 네가 무심쿠나...

 

한참 상념에 빠져 있다 '질문 하시오' 라는 멘트에 퍼뜩 정신이 드니 나에게 오너의 시선이 꽂혀 있다.

무식이 용감하다고 겁없이 툭툭 던지는 나를, 흐음..경계를 하는군.

정작 질문하라니 다들 꿀 먹은 벙이리, 그 말 좋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나 싶다.

똥 본 오리처럼 주절대던 입들 다 어디 갔스요...

내가 일당백 해?

도마 위에 오른 고기가 칼을 무서워할까.

---기성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순간 잠시 정적, 이소장, 박상무 쪼매 난감한 표정. 예상했다.

'생긴 거하고는 다르게 늘 강단이 있다 말이야' 하며 옆에서 속삭이는 이사장.

휴...난 무슨 조화속인지 일케 총대를 메냐.

일단, 시작부터 난 가시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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