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합실에서 고아처럼 앉아 있다, 나는.
어느 유행가를 떠올리며..<떠날 때는 말없이>
안전 기원제를 조촐히 지내자는 전무 전화가 아니래도 문득 떠나고 싶었다.
비행기도, 승용차도 아닌 열차를 타고....
날씨 때문이리라.
3월 내내 드리운 저 잿빛 하늘 때문이리라.
아직까지 기차를 타면 설레이는 나는,
나란 여자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디딜때서 부터 더 크질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그 때 이후로 나이를 먹은 것일 뿐, 더 크질 않았다.
나날이 바보가 되어 갈 뿐이다.
그러나 여자는, 여자라는 존재는 그 시절 부터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랑에, 자식에, 분위기라는 것에, 혹은 가정에, 돈에 스스로 족쇄를 걸고 노예가 되어 가는게 아닐까.
영혼에서 그 어떤 잎도 꽃도 피우지 않으면서, 노예의 나이테만을 키워 가는건 아닌가.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떠난다. 이제 떠난다.
떠난다는 것은 출발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하나의 시작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유라고 말하고 싶다.
자유...바다, 풀, 바람, 들판...환치(換置)하면 그런 것들일 수 밖에 없을 추상명사.
커텐을 젖힌 창밖으로는 끊임없이 들판과 야산과 거리가 이어지고 있는 풍경들.
아주 멀리 떠나는 여행객 처럼 바라본다.
그것은 길고 긴 망토자락이 발끝에서 너풀거리는 것만 같다.
이따금, 잊혀졌던 누군가를 떠올리듯 기적이 운다.
기적소리는 예전과 변함이 없는데....
저녁의 열차는 아침과는 다른 색깔로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밖에는 이제 어둠이 내려 앉을 것이다.
열차의 끊임없는 레일 소리와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아 보지만 정신만 맑아온다.
겨울숲에 내리는 싸락눈 소리처럼 속삭인다, 나에게.
블의 어느 글처럼 무관심은 소멸이다. 존재 하지 않는 마음.
그가 가지고 있는 원과 내가 가지고 있는 원이 만나 공유하는 그곳에 왜 빈 공간이 있을까.
마음 속으로 허무의 바퀴를 단 마차가 지나가듯 낙서가 쓰고 싶어져 식당차로 간다.
옛 친구에게 문득 쓸쓸하다....라는 낙서를 끄적이고 맥주를 한잔 하고 싶지만,
건너편 남자의 시선이 짜발나게 한다.
청승맞아 보이는 건 딱 질색인데.
혼자 차를 마시며 속으로 건배를 한다.
무엇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공간을 위하여...어쩐지 구시대의 잔재 같다.
산봉오리 마다의 휴식을 위하여. 이것은 너무나도 <괴테>적인가.
건강한 낮과 건강한 밤, 건강한 사색과 건강한 꿈.
그러나 어쩐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창밖의 어둠을 내다 본다.
어두운 하늘 아래 희미하게 그 윤곽을 드러내며 엎드린 야산들, 희끗희끗 바라보이는 논과밭,
반딧불처럼 멀리서 빛나고 있는 주택의 불빛들,
막막하고 무심히 지나는 저 모든 것들, 저것이 진실인가.
손으로는 매만져 지지 않으나 존재하기에 믿을 수 있는 저것이 진실인가.
그리고, 그리고 그 풍경 속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 열차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나,
기약할수 없는 우리, 이것 또한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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