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慧圓 2016. 12. 1. 08:23


준아.

꼽아 보니 네가 휴가 나와서 에미와 지낸 시간이 하루를 넘지 못했다는 것에 많이 섭섭하다.

소대 휴가니, 포상 휴가니, 하물며 정기 휴가 때에도  말이다.

에미가 거론할 때 네딴엔 부정이랍시고 뚱했던 표현에도 불구하고 귀대시 통화를 못한게 또 서운하고...

엄마는 이제 상주에서 물류창고는 마쳤고 기숙사동 작업에 착수했다.

그나마 이 곳 현장이 에미에겐 가장 편안하고 아늑해서 마치 고향 같은 품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매 주 월요일에 올라와서 목요일쯤 내려가니 주중 절반은 객지 생활이구나. 

숙소는 제목만 관광호텔이지 시설은 아주 노후되어 저번 여름엔 변기가 막히는 일도 있더라.ㅠㅠ

주차장이 넓은 그 한가지는 좋더라만.

다시 환절기인가 보다.

어딘가 비어 있는 마음으로 요즈음은 하루를 보낸다. 그냥 까닭없이 마음이 비어간다.

가을이 지나서 마음이 텅 비게 느껴지는 것은아니다.

투명해진다고 할까...


여름에 그처럼 탐스럽게 피었던 봉선화도 고개를 숙이며 수분이 증발해져 저 신세나 내 신세나 매 한가지인 양.

해마다 그냥 스쳐 지나지 못하는 엄마는 올 여름에도 백반가루를 섞어 손톱 발톱 열 개를 시뻘겋게 물들여 놓고 바라보며 손톱마다 들여지는 그 미묘한 색감의 차이에 신기했었지.

어쩐지 저마다 달라 보여 우리 아들들에게 내 년 이맘쯤엔 어떤 색을 물들이고 지나갈까 잠시 생각해본다.

엄마는 너희 둘에게 가지는 마음의 색깔을 굳이 평하자면,

네가 알기에도 참 한심하게 실연이나 하려고 세상에 나온 것 같은 다소 개인주의적인 형아는 반면 끈끈한 생활력이 있는거 같아 숨은 신뢰감과 든든함이 있고, 네게는 햇솜 같은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있지.

네가 '남수 이모가 엄마 옆에 있어서 참 좋다' 라고 했을 때 에미는 네게 되려 고맙더라. 

올 해 2월 그녀와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그 순간 5년을 훌쩍 뛰어 넘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겨울 네 번을 우리들 앞을 지나 가고 있었지만  찰나적으로, 우리는 5 년쯤을 서로 아무일 없었듯이. 그리곤 갈 수 있는 곳에는 어디든 싸돌아다니며 지껄이고 또 지껄였다.

우리 역사의 숲속에서 그 어떤 진실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처럼.

어찌나 떠들었던지 아직도 머릿속엔 우리가 나눈 말들이 남아서 달그락 거리고 있다.

누구나 가져보는 젊은시절의 소박한 꿈과 추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모양으로 바껴 가는 것인지도.

얼굴에 주름이 잡혀가듯 그 시절에서 세월의 주름살이 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아침 햇살이 판넬 지붕위로 기어오르고 있는 현장은 차라리 한가롭기까지 하구나.

오늘 날씨가 비 온 후라 아주 청명하고 싸한 기운이 피부에 와 닿아 몸의 세포들이 발기가 되는 상태.. 이 기분이 엄마는 참 좋다.

생각해 보니 에미의 지난 세월들은 비 오고, 바람 불고...길고 먼 길을 왔었다.

이젠 희망을 가지려고 하기 보담 어제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하지만 근본적인 데서는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다.

너도 이제 중고참이 되었으니 앞으로 제대 후의 계획이나 구체적인 진로를 진중히 고려할 때인거 같다.

이제 부터 먼 길을 떠나는 너에게 당부하고픈 에미 생각은, 너의 시대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국이 하수상하지만 세상에는 희망이 더 많고 미워해야 할 것들보다는 사랑할 것들이 더 많고, 잊고 싶은 것들보다는 기다려야 할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아직 젊기에 아름다운 때, 순결하기에 설레임도 있을 것이며, 좌절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 예로 전무님의 프로젝트가 모두 다 성사되었음을 알린다.

시작 초기에 모두 거의 불가능이라 했던 것을 오롯이 혼자 힘으로 어언 일여년간 -작년부터 착수 했으니-  고군분투하며 이루어낸 성과로 정말 대단하고 존경 할 일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또 길게 풀어놓겠지만, 아무튼 그 도전 정신의 근원이 아니었다면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새벽에 시끄러운 소음에 잠이 깨, 여긴 농가가 많아 키우는 닭부터 시작해서 고양이 울음, 개가 짖어대고 까마기가 울고 까치가 노래를 부르니 동물원이 따로 없다.

한가로운 초겨울 경치 운운하는 에미와 달리 훈련에 매진하는 울 아들에게 혼신을 다해 사랑하며.

오늘은 이만.


아들의 사랑에 목마른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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