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주니가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을 찾았다.
흔한 은행이 아니라서 우리 지역에서도 겨우 한군데 있는 곳을 검색해서 갔는데 볼 일을 마치고 오는 녀석의 표정이 영 아니다.
이유인즉슨, 주거래 은행에선 입출금이 무료인 줄 알았는데 수수료가 공제 되었단다.
그것도 <오 백 원!>
헐~ 짜증은 내가 날 판.
그 은행 찾는다고 몇 바퀴나 돌아 놓고선, 그 유료비나 시간은?
당장 제 돈 나가는 건 아깝고 에미 지갑에서 새는 경비는 안중에도 없는 녀석의 수준이 한심.
어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엄마, 형아는 자동차 보험료를 진즉 가입해서 지금은 얼마 들어가지도 않던데 왜 내 건 안 들어 놨어?
나도 좀 넣어 놓지..."
---???...... 너 차 있냐?
"회사 차는 형 명의로 돼 있더만... 나도 좀 해 주지.
--- (뭐지 이 눔?...) 음, 형아는 장남이라 엄마 빚도 아마 떠안았지. 너도 차용 문서 넘겨 줘?
"........"
전역한 이후 주니는 여태껏 한 번도 내게 용돈을 타지 않는다.
심지어 휴대폰 요금이나 교통비조차도.
딱히 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음에도 내게 돈을 달라 하지 않는다.
은연중 자신에 관한 것은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사고가 인지되어 있는거 같아 내심 기특도 하다만, 전역 즈음에 어지간 속내를 앓았다.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진로를 군대에서 또는 대학교 졸업때즘 어렴풋이 잡혀가지 않나 싶은데,
주니는 입대 전부터 사진 놀이에 빠졌었다.
중학교 졸업 직후 헬렌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캐논 카메라에 미쳐 결국 거금으로 에미 지갑을 열게 하곤 몇 년을 만지작거리더니 폐물로 만들었었다.
취미로만 잠깐 하고 말 일이라 판단한 내 잘못도 있지만, 주니는 전역 후 영상학과로 서울로 편입을 하겠다고 내 속을 긁었다.
그 문제로 서로간 몇 달을 실갱이 하고 설득하여 <편입은 안 된다, 복학하고 졸업한 후에 네가 찍사를 하든 영상기사를 하든 그땐 개의치 않으마> 로 일단락을 지었지만, 주니가 가려는 길은 정말이지 고단하기 그지없는 여정인 걸 지금 그 놈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하여 내년 복학을 앞두고 8개여 월 동안 이놈이 한 일은 자신이 원하는 카메라를 사기 위해 현장 노가다를 비롯, 투잡 쓰리잡 까지 하며 은행 수수료 500원도 애 닳게 모은 돈이 지금은 꽤나 되는 눈치다.
사진기값이 족히 사백이 훌쩍 넘는다고 하니...
누구나 자신의 일이나 아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나고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주니는 사진 작품이나 작가에 관한 얘기라면 팩트를 포함 다양한 일반 상식을 끌어와 열변을 토한다.
작년 여름에 굳이 노후 대책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부산 근교 주위에 수야와 공동 매입한 조그만 땅을 주니 명의로 해 놓았었다.
일 년 이상을 방치해 놓았더니 잡초만 무성해 올해 가기 전에 농막이라도 설치코저 지난 금요일, 주니에게 행정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나 시켜 볼 양으로 사전 허가 신고를 하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관공서 출입이나 민원서류 등에 접한 일이 거의 없던 주니에게 중요한 공부가 되리라는 나름 에미 속셈도 있었지만.
그래서 기본적인 서류를 갖추어서 양산 시청 건축과를 찾았더니 그 토지 주소를 보고 제 2청사로 가라고 하더란다.
그때 일차적 실수를 시청 직원이 하고 말았는데, -그 직원이 주소지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주니가 헛수고를 안 해도 될 것을 - 2청사로 갔더니 다시 분류해서 출장소로 가라고 하여 주니가 '그럼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 주시죠' 했더니 청사 직원이 잘못을 시인 하더란다. -그나마 양심적 직원이 있어 다행-
결국 출장소로 가서 마무리 되는가 싶었으나 거기선 공동명의로 된 사람과 같이 와야 한단다.
여기에서 열 받은 주니.
"아니, 그래서 본인 인감 증명서와 지상권 사용 동의서를 첨부하지 않았는가. 인허가 문제도 아닌 소형 이동 주택을 앉히는 신고를 하는 것인데 굳이 본인 방문이, 그것도 본인 확인만을 하기 위함이라면 너무 불필요한 소모에 더구나 부산 거주지에서 다시 오려면 주말 건너 월욜 재방을 하라는 것인데 서류 미비도 아니면서 이런 절차가 이해가 안 된다"
라고 따졌더니 당황한 담당자가 점장에게 보고하더란다.
그리하여 지점장의 허락이 떨어져 겨우 접수를 시키고 오면서 의기양양한 주니,
"엄마 제 활약으로 해결하고 왔어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관공서나 민원 처리를 마냥 귀찮게만 여기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 일로 주니는 무조건적 수용만이 아닌 그 문제에 대한 필요성과 이유를 따져 봄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관이 있듯 가난한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더욱 풍부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부자들은 더 바랄게 없이 행복에 익숙해진 나머지 행복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주니는 매 순간 자신의 통장에 입금하는 재미를 온전히 느낀단다.
힘든 과거가 있는 사람들은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바라 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
얼마나 힘든 성장기를 보냈든 간에 사람은 누구나 젊은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