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주니 전역

慧圓 2017. 4. 14. 22:36






주인이 떠나고 난 빈 방,

모든 것들이 중력을 잃었던 옷, 책, 침대까지 햇볕에 밀려 천정에 떠올라 부유(浮游) 하는 것만 같았던 방. 

달리의 그림처럼 방안의 온갖 물건들이 허공에 떠다니는 그 투명한 방에서 내 코가 참아줄 만큼만 옅게 퍼져 있는 짓눌린 먼지와 그동안 함께 했다.

해빙이 시작되는 봄철이면 뭉게뭉게 안개가 방으로 쏟아져 들어와 습기조차 꿈틀거렸었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하얀 햇살.

그 햇빛사이로 익숙지 않은 냄새가 아리하게 내 코를 스쳐간다. 

방문을 여니 침대 위 그을린 속살에 털이 수북한 두 다리가 대조적이다.

, 주니가 전역을 했지.



아, 이제 이놈에게는 길고 긴 雨季가 시작 될 것인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복학이 안되니 올 한 해를 군인도, 학생도, 일반인도 아닌 신분으로 보내야 한다.

아침이면 언제나 비가 내리는 것 같은 나날만이 자신의 몫이란 걸 주니는 알까.

마음에 내리는 소리 없는 비를 맞으며 계획 같은 걸 세울 수 있을까.

우리의 모든 일정은 비가 그친 후의 것인데...

모든 것을 지연시키는 것에 길들어져 포기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무력한 나날이 가지는 변화 없는 일상과 혼자이게 만들어가는 그 무엇에 녀석은 허우적거릴 것이다.

이제 발가벗기워진 자신을 보았을 때, 조직안에서 보호 받았던 규제, 매달려 왔던 일상의 규칙들이 행복하였음을 알 것이다.

아무리 에미가 비애의 입맞춤을 가르치고 고난에 두려워 말기를 속삭이고 편안한 삶의 속절없음을 일깨워준다고 알 수 있을까.

그것들은 오롯이 자신만이 그 과정을 거친 경험만으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므로 무책(無策)이다.

창에서 햇빛이 사라지고 하루 종일 허공에 떠다니던 옷가지며 책들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들어갈 때 즈음 주니가 일어났다.

그래도 세상의 서러움은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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