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일지

변화

慧圓 2020. 6. 25. 13:03

 

예전에는 싫고 좋은 것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것에 질색이었는데, 이젠 여과 없이 드러내는 투명함이 불편하다.

직설적인 회장의 말투도 거슬리고 소장과의 정산에 있어 따짐이 귀찮아 빠르게 포기하는 것. 

이게 나이 듦의 징조인가.

원청과의 조율도 갑과 을의 명확한 경계를 지었던 젊은 날에 반면, 요즈음 자신의 사고가 을은 영원한 희생물, 또는 내가 여자이니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깎이며 희생해 오지 않았던가! 에 생각이 미치자 화들짝 깨는 기분.

그동안 아이들이 철없는 에미라고 여긴 것도 위엄 없이 기쁨과 슬픔에 적나라한 감정 표현으로 공감을 바랐던 탓이 아닐까. ​

미니만 하더라도 아름다운 꽃, 예쁜 그림을 봐도 그저 최소한의 표현만 하고, 자신의 기쁨 앞에 무슨 장벽이라도 세워져 있기라도 한 듯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하는데.

마치  감정 소비의 절감이 과묵한 것으로 아는,​ 기쁨을 억누르면서 계속 참고 견디기만 해온 여늬 남자들처럼.

요즘 자주, ​여자들은 모든 것이 희생의 십자가처럼 여겨지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고, 또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 한다. 

말없는 ​희생은 모두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다.

이번에 낙찰된 현장도 정이사에게 내 본뜻을 알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대로 희생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건 아무 뜻 없이 선물하는 거나 마찬가지 짓.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거래 방식에 있어 오너의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남자는 여자의 그런 애매한 트집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서로 간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언제나 먼 곳에 있는 것을 추구하기로 스스로 다짐한 일이 있었다.

​나는 뭔가 다른 것이 창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건강한 형태의 이기주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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