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 때 꿈은 요술쟁이가 되는 것이었는데, 약자를 짓밟는 나쁜 사람들을 벌주고 싶어서였다.
'정의를 위해 요술을 쓰겠어'라는 요술공주 세리나 밍키까지는 아니어도, 마법을 걸 수 있는 재주가 있어 나쁜 짓이나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에게 뇌세포가 조금씩 죽어가게 만들거나 몸속의 어느 부분 장기가 손상되는 그런 마법을 걸 수 있는 요술사 말이다.
그래서 나쁜 사람은 죄를 짓는 만큼 육체나 정신이 소멸 되어 결국에는 세상에서 지워지거나 사라지게 만드는.
참 허무맹랑한 꿈이었지만 이건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고 자가 분석을 했다.
그 메마른 꿈은 얼마 뒤 나의 청소년기에서 소멸되었지만.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에서부터 많은 혼란기를 겪었던.
누가 나쁘지?
무엇이 정의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지?
'정의'라는 말이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었는지 그것은 이론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에 닿아왔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그것을 위해 젊음을 바치겠다고도 마음먹었는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정의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현실을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늘 갈등한다.
정작 표출은 없지만 변화의 의지는 가졌음을.
그러나 일상에서 얼마나 과연 어떤 비전을 가질지는...
나의 DNA가 그래서 주니에게 갔을라나...
현장에서 작업자와 되도록이면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지만 나의 이런 기질로 순간순간 넘어가질 못하는 게 문제다.
용역에서 온 작업자들 서넛이 제시간에 충분한 작업량을 가지고 절반도 하질 못하고 시간만 죽이다 사인을 해달란다.
벌써 사흘째다.
으으으... 나에게 마법의 지팡이가 있다면 저치들을 개조시킬 터인데. 도깨비 방망이로 패주고 시퍼ㅠ
용역 회사 대표를 불러들이고 작업자들을 소집한 뒤 소리친다.(예전처럼 헬멧까지 집어 던지지 않아 다행ㅠ)
아니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바르게 삽시다 쫌!
기나긴 장마.
우기((雨期)이지만 하루 반짝한 날 타설하고, 내렸다 개였다 하는 비의 조율에 맞춰 그나마 작업 공정엔 차질이 없음에 위안한다.
오후 참 시간.
푸른 나무 그늘 아래 음식을 펼쳐놓고 담소하는 사람들을 등지고 숲길을 바라본다.
나뭇잎이 울렁인다.
이 현장은 도시와 농촌 중간지점이라 주위에 초목들이 있어 참 좋다.
펌프카 기사의 장난질. 빛에 반사된 거울이 나무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돌아다니다 짙푸른 잎에 부서진다.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고 나는 소장과 술잔을 든다.
술 냄새에 취했는지 웃음이 자꾸 번지는데 정이사가 다가와 내게 일러준다.
그렇지 . 약속이 있었지. 현장에서 노닥거리다가 잊어버릴 뻔했다.
나는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길을 나선다.
햇살이 스름스름한 걸 보니 어느새 석양이다.
비온 후 일몰의 저 빛은 눈물이 나도록 사무친다.
이 시간에 호출하는 회장도 꼴뵈기 싫고, 약속 시간에 늦어 조바심이 났지만 본부장의 한마디에 여유를 가진다.
어제 작업자들 훈계에 대한 뒷담이다.
"노가다 경력이 그냥 경력이 아닐세, 정** 뱃심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