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가 들 뻔했다.
아니 피해는 없었으니 강도는 아닌가.
추석 연휴가 끝난 며칠.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귀가한 주니.
2층 계단 즈음에서 우리 집 현관 도어 키 소리가 나더란다. 삐삐삑.. 삐삐삑. 에러.
'엄마가 취중에 잘못 누르나...?' 하며 3층에 오른 순간,
검은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 쓴 30대 중반의 왜소한 남자가 우리 집 키를 누르고 있는 것을 목격.
"누구요?!" 단말마와 동시에 상대의 팔을 잡았는데 나는 듯이 후다닥 토끼더라는 것이다.
정말 찰나였단다.
달아 나는 도둑의 등 뒤에다 정문일침을 놓았다곤 하는데, 정작 에미는 거실 소파에서 공주잠을 자다 아이가 하는 말에 잠이 화다닥.
주머니에 어떤 흉기로 위협당했을지도 모를 그 상황에 무턱대고 잡아서 어쩌겠다고... 아찔했던 순간이다.
그 문제로 며칠 동안 주니에게 충고를 하였지만, 장신의 덩치를 자부하는 이 넘이 얼마나 알아들었을지는.
밤늦게야 불이 켜지는 집인 데다 우체국 택배나 코웨이 직원에게 비번을 쉽게 불러준 게 화근이었을까.
아니 그 날따라 불도 안 켜고 일찍 잠든 내 탓인지도 모르겠다.
절친 수야가 새벽녘 화장실 다녀와선 코피를 한주먹 쏟아냈다.
일반적으로, 환기철에 건조하고 찬 공기가 유입되어 코안의 점막이 건조해지면 나는줄은 알고 있지만,
세수를 하거나 후비적거렸을 때 나오는 적정 수위를 넘어, 본인 말에 의하면 '뭉터기'로 나왔단다.
세면대 부위는 그야말로 혈흔들이 남아 있어 나도 내심 놀랐다.
그런데다 그 날 골프 경기가 끝나고 식당에서 매운 음식을 먹다가 또 한 번 쏟아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필드 다녀온 친구의 혈색은 하얗다 못해 메가리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혈압을 재보니 200이나 된다.
평소 혈압이 있는 친구가 아니어서 크게 걱정은 안 했지만, 급한 마음에 청심환을 먹였다.
일단 열이라도 낮춰야 할 거 같아서.
그런데... 이틀 뒤, 딸 혜선이네 집에서 야심한 시각에 또 한바탕 쏟아지며 지혈이 되지 않아 결국 119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이 무슨 봉변인지.
하긴 혜선이가 직장을 다니게 되어 친구는 요즘 몇 달째 손녀 뒤치다꺼리, 살림에, 일터에서 종종거렸었다.
보모, 주부, 직업인으로서 일인 삼인 역을 하는 데다 더구나 그 와중에 거의 주말마다 필드를 가니 어째 고장이 안 날까.
응급실에 누웠는데 스르르 정신이 혼미해지며 가라앉을 때 그런 생각이 들더란다.
'이대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환장하네.
나는 요즘, 사람의 마음이 마음이 마음이...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노래를 부르며.
필연이라고 믿지 않는 내 작은 윤리관인가.
나에게 어떤 편협한 점이 있겠지만... 혹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인가'라는 의문만이 조금씩 두려워 숨이 막힌다.
아름다움과 진실에 대한 이상을 공유하지 못하는 슬픔...
그래서 이번 가을은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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