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가을

慧圓 2011. 10. 10. 00:29

 

 

여름은 시들어 고개 숙이고...

 

 

 

아직은 햇빛 속에 열기를 숨긴 가을이 아침 저녁 서늘하게 다가와 있다.

 

 

가을의 계획들을 세워야 하는데...

내 마음 속에서도 빈 감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것만 같고.

 

 

 

 

인내의 한계, 그 벼랑 끝에서 떨어져 가는 스스로를 조소하듯 바라보면서

색동옷 입은 저네들의 평화가 한없이 부럽기만 한데..

 

 

 

아, 가을인가.

 

 

 

미니와 수시여행을 갔다.

시험이 아닌 여행이라 함에 우리 모자가 그다지 집착과 애닮음이 없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에미는 에미대로 오랫만 외출을 즐겼고, 미니 또한 그동안 그렇게 치열한 수험기간을 보낸것 같지 않아서다.

하루 전 날 도착하여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차를 마시고, 명품고기를 먹고, 푸욱 주무시고 다음날 일찌감치 나섰더니

I.C 입구에서 부터 차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수시 모집으로 인한 체증이 심하다는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입시전쟁을 실감한다.

시간은 넉넉했지만 1키로쯤 남겨두고서 꼼짝도 안하는 차들의 이동에 걸어가시겠다는 아들.

그려~ 머리도 식힐겸 도보도 괜찮겄지.

36대 1이라는 모집의 학교의 정문을 들어서니 운동장엔 자동차 백화점인 듯.

 

낯선 대학의 여기저기를 천천히 거닐어 본다.

대학의 캠퍼스 한곳에는 운동장에서 야구부 선수들이 연습을 하며 지르는 소리가 가을이 익어가는 교정에 간간히 울려 퍼지고 있다.

몇명의 남녀 학생들이 웃으며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갑작 나의 젊음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절제된 재수 시절.

치열한 금욕의 시간들.

그때는 참 비참했었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던 그 황망함.

을씨년스럽기만 했던 교정에서

부끄러움과 그 부끄러움을 찢고 터져 나오려는 일말의 억울함 같은 것을 겨우겨우 참으며 돌아서야 했던.

 

낙방의 쓰라림이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승리보다도 패배는 더 많은 것을 가르치는 법이란 걸 나는 잊지 않았었다.

패배를 통해서 더 강해진다는 것을.

불에 달구고 망치에 맞으면서 더 강한 쇠가 되듯이.

언제까지나 패배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었지.

모든 쾌락이여 내년에!

 

그런 기분으로 살았었다,

유예된 청춘이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모든 슬픔도 기쁨도 나에게서는 거세되어야 한다고,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참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

훗날의 약속을, 미래에 대한 보상을 믿을 수 없어도 좋았다.

그시절 그 시간은 참아내기 위하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여겼으니까.

 

 

 

 

 

 

오는길에 들른 마곡사.

스님덕분으로 자주 들러보네.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승방이 그지없이 정겹다.

미니가 저 양반다리를 잘 못하는 관계로 스님에게 바른자세와 절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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