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물고 있다.
바삭거리는 가슴 바닥에 낙엽이 소리없이 깔린다.
아, 그날은 어쩌자고 햇빛이 그다지 좋았을까.
가을 햇빛, 그것 뿐 이었다.
화사하게 쏟아지고 있는 햇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떠나지 않을수 없었다.
복잡한 생각들의 치마폭에 싸여서 바라보던 그 날의 그 빛나던 햇빛.
나뭇잎은 언제나와 다름없이 너울거리고 있었고,
현장은 그닥 무리없이-일방적인 나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는데..
영혼의 절망을 확인해 주는 육체는 어떻게도 건너지 못할 강이야.
가장 헛되고 부질없고 썩어질 것이면서 나를 무겁게 하고 건너지 못하게 했으므로.
그것이 내게 베풀고자 하는 작은 위안을 환각을 기만을 거부한다.
맑은 공기를 부여해 주어야만 한다.
어제는 모든 게 골치 아프고 메스꺼워 책상위 켜놓은 초 타는 냄새조차 이상하게 메스꺼워..
내가 비상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진 때문이야
날개는 오히려 내 육체를 내려다보지 않았을 때 있었어.
이제 내가 만나게 될 바람이 어느 산들바람인지 태풍인지 봄바람인지 모른다.
다만, 떠나면서 그 말만을 되뇌이고 있다.
가을이면 단풍이 불타고, 가고 또 가도 싫어지기는 커녕 갈수록 더욱더 깊은 정이 든다는 순례자의 길.
비오고, 바람 불고, 눈이 와도 길고 먼 길을 택하고 싶다.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는 설레임도 함께 가지며...
우스운 생각 하나.
불교가 왕성했던 신라시대.. 원효. 의상. 자장대사가 주축을 이룬 그 시절에 굳이 갇다 붙인다.
지금의 학식 수준의 S.Y.K. 주류로 치부한다면
백제의 문화는 Y대스런 맛이, 신라시대는 K대스런 맛이 아닐까 하는 아주 개인적인 생각.
문득 왕궁리탑을 보며 잘 차려 입은 오십대 가장이 무도회장 가는 모습이 연상된다면 생뚱맞을까.
난 아무튼 그런 느낌을 받는다.
기단부가 넓었다면 또 다른 이미지였을 테지만..
아마, 좁은 탓에 스텝을 밟는 가벼운 발놀림이 연상되었는지도.
감은사가 헌헌장부라면 왕궁리는 선비의 묵직하면서 날렵한 '멋'이 돋보인다.
탑을 돌며 탑에 안겨 탑과 같이 왈츠라도 추고 싶다.
아님 지루박도 괜찮을까.^^
지금은 그냥 피곤하다. 몹시,몹시도.
풍화(風化) 마음의 풍화.
가슴에 남겨진 어떤 사람의 모습도 시간과 함께 비바람에 씻겨가는 것 같은.
잊혀진다는 뜻이 아니라 생생했던, 가까왔던, 부르면 왜?하고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던 어린 마음이
차츰 굳어져 가는 것.
그리고 세월과 함께 자라나는 그 두터운 껍질들....
한 그루 나무처럼 삶의 한가운데서 싸워가기보다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그때까지 내 모든 것이었던.
나의 하루는 바다위에 떠다니는 목선과 같이 출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행로에 떠 있는 작은 배 하나.
저 탑도 나와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