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을...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서 서성거리는 어떤간이역처럼, 마음이 종종거릴 때
역시 여행은 마음을 더욱 심오하게 한다.
거기에다 문화재든 사찰 순례든 유적 답사지이든 간에.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모래가 흘러내리듯 반추하고 있는 자신과 유적들의 유구함.
삶의 강물을 두 손을 오므려 조심스레 떠올리기 시작하는 나이에 되돌아보는 순례기.
자신 앞에 놓인건 시간이라는 가능성 뿐,
그 무엇에도 부서지거나 찢기지 않은 자연과의 축복을 위하여 살고 싶다.
신라라고 하면 경주를 떠올리 듯, 백제의 도시 부여로 떠나 본다.
난 왜 이제까지 이도시를 어렵게만 생각했을까.
어렵다는것이 수이 마음이 가질 않았던게 우선이었고 아무런 연계나 고리가 이어지지 않는 곳이라 그랬던가.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막상 들어선 도시는 진입부터 예사롭지 않다.
찬란한 백제 문화의 유적지 다운 면모이다.
정림사탑은 입구에서 부터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며 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대서 애써 그렇게 해본다.
그닥 많은 견문도 아니지만 이제껏 보았던 무겁고 장중한 신라탑 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옥개석이나 지붕돌, 탑신..지대석과 기단부등.
가까이서 보니 지대석 기단부가 5층 탑신에 비해 많이 좁고 얇고 낮다.
연약하고 날씬하다.
여러 개의 돌을 맞추어 세웠다.
기단이 1층 지붕돌보다 좁다.
같은 오층탑이라도 신라의 것은 기단이 1층 지붕보다 넓어서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안정감이 뛰어나며 탑신도 큼지막한 돌 한 덩이로 만들어 척척 올려 쌓아서 아주 무겁고 둔한맛이 있었다.
백제의 탑을 처음 대하면서 백제와 신라의 특성이 탑에서도 잘 배어 있는걸 느낀다.
아..그러나 도도한 아름다움.
화려하면서 천박하지 않은 세련미.
백제인의 기품이 다가온다.
난 이런 느낌들을 간간히 일본에 가서 느껴보았던 기억들이 나는데 백제의 문화를 이제사 접해보니
왜 우리의 것을 다른나라에서 먼저 보았을까..하는 후회.
기원이 되는 문화에 바탕을 두고 기량을 보완한 그네들도 참 대단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멋부림은 가히 일미이다.
기단부랑 지대석..지붕돌과 면석, 역시 다르다.
설명문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라며
1층 탑신에 새겨 놓았다는 글귀는 찾을수 없었다.
다행이다.^^
강당 건물의 치미나 이중 처마선 내림이나 어디서 본듯하여 유심히 살펴보니 친구 블러그에서 보았던
일본사원의 양식과 비스무리하다.
역시 일본의 기원은 백제인가.
전시관 건축양식도 일본의 것과 거의 흡사하다.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으니 -년대를 찾아보기 귀찮다.555년?-
그네들이 보기엔 백제가 대국이 아니었을까...
고려시대 중창된 강당건물 안에 상대 중대 하대로 이루어진 팔각대좌와 석불좌상
팔의 형태로 보아 비로자나불상으로 짐작된다 함.
갓을 쓴 석불의 표정이 재밌다.
아무리 봐도 신라시대와는 거리가 있지만 아름다운 선(線)과 정교한 조각이 눈에 띈다.
단정하면서 균형미도 있다마는..
하긴 내가 무에 심미안이 있겠어.
천평남짓 하다는 박물관 건물은 현관을 들어서자 썩 커보이지만은 않는 홀이다.
어떻게 관람하든 제자리로 온다.
세개의 마당과 세개의 공간. 전정, 중정, 후정.
건축의 묘미이다.
많이 아쉽다.
남은 행선지가 미륵사지, 왕궁리탑, 금산사로 잡혀 있어(누가 시켜?..내가!ㅎ)
마음은 촉박하고 감상의 시간은 한없이 길고 볼 것은 너무 많고 감흥도 제대로 느끼고 싶고ㅠㅠ
석탑의 얕고 좁은 기단부의 아쉬움과 같이 옮겨야 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