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즈믄 달이 나를 비추지만 집을 나서는 심정은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심적으로 그랬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현장에 들어서면 워커를 신은 나의 발소리만이, 발판대를 짚으며 올라가는 나의 묵묵한 발걸음의 침묵만이 나의 전신을 짓누른다.
살아서 화석처럼 아득하게 굳어버린 노가다 입문 당시의 기억을 인출하면서,
열악하기만 한 그 시절의 현장과 노동시간의 가혹함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데도 왜 행복했을까.
지금은 왜 이렇게 압박감만 드는 걸까.
처음 터파기 하던 그날도 오늘처럼 저녁이어서 하늘 저편으로 진홍빛 황혼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는데...
그 빛을 등지고 서 있는 현장의 마을은 마치 움직이는 듯, 그대로 하나의 섬 같다.
조용하고 아담하며 청량감까지 들어 마을 초입에 들어설 때면 큰 호흡을 두세 번 한다.
무엇이든 처음 도전하는 것에는 오기가 생긴다.
나의 알 수 없는 오기도 새로운 공정에 지지는 않을 거라고, 그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지 않으리라. 어금니를 악물면서 그렇게 자신에게 약속했었다.
턱도 없이, 神과 거래를 하면서.
당신이 두 가지를 주지 않을 것이란 거 알기 때문에 포기하리다.
누군가를 포기하면 자유로울 것이니.
내가 사랑하는 놀이 때문에 일을 데문 데문 하기보다 나를 사랑해주고 찾아주는 현장과 작업자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그래서 지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야 한다.
무엇에 이긴다는 것도 우습지만, 그러나 지지는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이 현장에 애정이 생겨 버렸다
지나가는 짧은 순간들은 잠시 동안만 살아있다가 낡고 오래된 순서대로 기억에서 소각되지만, H 모양의 도리를 처음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이상한 흥분이 들었던 것도 그중 하나.
그것은 조선의 홍살문과 너무나 닮아 있어, 설명 안 되는 의욕으로 가슴이 불덩이였었다.
마치 그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런 표현이 가지는 느낌이 좋아서..
그 온기를 기억하고파 별도의 수련이 필요 없이 이젠 내 공간에서 약간 빈둥거리며 일하는 자유로움이 어떤 건지 알 정도로 여유가 생겨 아예 건축주에게 고마움이 들 정도.
착공한 지 두 달.
이제야 절반 끝에 왔다.
조적과 매지를 다 넣고 내부 내력벽 노출도 끝났다.
화장실 미장과 방수도 했고 지붕은 하지 작업을 마쳤으며 징크 마무리를 하고 나면 외부 비계를 털어야 한다.
그다음 이 주택의 키포인트인 박공지붕의 석가래와 외기 접한 면인 가베에 원목 취부인데, 인테리어 업자 선정이 아닌 내장 목공만을 불러 작업시킬 예정이라 얼마나 완성도가 있을지 그게 관건이다.
환기구가 징크에 맞물려 잘라내고 엘브로 유도한 뒤 벽돌로 마무리 작업
설명하기 위해 잘 그리지도 못하는 그림을 억지로 그려 대며 업자에게 수정을 요해야 한다.(캐노피 부분)
발코니 방수
샤워실 방수
캐노피 방수 작업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건 싸움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왜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기고 지는 것도 아닌데.
현장 대리인으로서의 책임을 누구와 이기고 지고를 생각했다는 거, 그게 잘못되었던 거지.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앞에 떨어진 일은 뭐든지 할 것 같은 열정으로 같은 경우가 또 온다면 그때와 똑같이 불이 되어 일어설 거다.
나는 나를 알아.
완성을 보는 것, 준공하는 것.
그게 이기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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