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잘 살펴보는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단점일 수 있다.
특히 일에 관해서는 사람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
더불어 능력,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번 출장에서 실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람이나 일이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거드름을 피워서도 안되지만 분별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분별력을 초월하지 않으면 진전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흐르는 듯, 수동적이 되어서는 발전이 없다는 얘기이다.
혹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시켜서도 안되며 결과적으론 자신이 져야 할 몫인 것이다.
주니에게 누누히 강조하는 부분, 그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현장일을 마무리 했음에도 어디 둘러봐... 시간이 좀 일렀다면 직지사로 갔으리라.
집으로 바로 가기를 주저했던 자신이 얄밉게 느껴진다.
분명 분별을 초월했다.
친밀도를 증가시키는 것과 이성으로서 접근하는 것은 다르다.
자신에 대해서 감추는 것도 별반 없고 담아 놓지도 못하고 물어보면 무엇이든 답하는 나를 한심스러워 하면서
문득 돌아오는 출장길에서 선전용 전광판을 멍하니 보고 있던것에 실소를 한다.
어느 남자모델의 두툼한 가슴에 역삼각형의 뒷모습을 보며 흠~~
팜므파탈도 아니면서 관능적이 되어보는 생각의 일탈.
나도 모르는 일면이 있던가..그래 아직 시들지 않았다는 얘기겠지.
아님 이제 눈을 뜨는겐가.^^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건가.(분명 노래가사 같은데..)
우리가 입장차이라는 것에 생각을 해보면, 똑같은현상을 놓고도 방향은 같은데
서로 달리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시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
즉 입장이 다를 수도 있겠다.
와중에 오해도 생기며 견해차가 생기며 상대에게 섭섭한 감정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에 서보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월한 분별력에 필요한 것은 입장을 바꿔보는 것이다.
썩 유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운전을 하니 심사가 꼬인 것이리라.
그동안 나는 멀쩡하다고 생각했지만 육체는 피곤한가 보다.
눈은 뜨고 있어도 머리 속은 멍한 상태였다.
마음이 해이해진 탓인지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싫고 앉았다가 일어나면 캄캄해지기도 한다.
피부도 까칠해졌고, 친구가 갱년기라는 말에 코웃음 쳤지만 실감하지 않을수 없다.
일에 지쳐 아무래도 몸은 늘어졌다.
그나마 <변화>라는 것에 몰두한 그간의 시간이 있어 침정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아침 1시간은 밤3시간과 같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천에 박차를 가하지 못했던 자신을 채찍해보며
주말이라도...하는 맘으로 나섰다.
숲속의 맑은 공기안에서는 시선까지 맑아지는 것일까.
요즘 자주 들리는 세로토닌을 상기해보며 보폭을 넓히고 조금 빠르게 걸어본다.
이렇게 5분만 걸으면 뇌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해 15분 후면 분비량이 피크에 오른다고 하니...
얼마전 인터넷 검색에 우울증도 세로토닌의 수치가 떨어져 생기는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