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외출에 밖 날씨가 섬뜩하다.
어느새 계절은 하늘이 높아졌고 바람이 차가웠으며 볕이 따스해졌다.
거리에서는 벌써 겨울이 느껴지려 한다. 패딩을 입은 사람도 있고, 속 내의가 생각난다.
가을이... 가고 있었다.
수야가 며칠 만에 일찍 출근해 조찬 회의가 세 여인의 수다로 이뤄졌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숙이 부부의 사랑 척도에서부터 혈압 상승, 가쁜 호흡, 두근거림에 시달리고 있는 나의 갱년기를 논하고 있다.
성숙이를 보면 남편을 사랑하니 그를 통해서만 보고 듣게 되고 자신의 모든 길은 자기 남자에게로 통한다고 할까. 그래서 여자란 한 남자에게서 배우며 성장하는지도.
나도 한때는 사랑이 전부가 아니면 전무일 때가 있었는데..
부재로 인한 적나라한 비탄에 잠겨 '나를 심장에 간직하든지 쫓아버리든지. 사랑에 매달리다가 갑자기 사랑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깨닫게 하지는 말기를' 얼마나 갈구했었던가.
그 사람이 나와 다시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끔찍하지만 이별이 가져올 고통을 그 자리에 남아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에 더욱 끔찍해 했다.
말다툼은 아무것도 아니다. 서로 다시 보지 않게 되더라도.
내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마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어쨌든 사랑하는 누군가를 증오하는 일은 지독하게 피곤한 일이다.
시간이란 또 얼마나 아름답고 붙잡기 어려운 것인가.
지나간 시간을 생각할 때 찾아오는 통렬한 상실감을 감출 수 없다.
서로의 시간에 서로의 지문을 묻히며 보낸 나날들. 기다리며 놓여 있는 그 가지런한 시간을 헤집고 가지 않을 수 없도록 아픔을 누르며 그녀들의 얘기를 듣는다.
내가 가지고 있던 단순한 기쁨, 단순한 의욕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저 무의미한 일상사가 있을 뿐. 한때는 즐겁기만 했던 그 일상사가 또 다른 씁쓸함으로 남는다.
누구나 자기가 살아가고싶어 하는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비참해지기보다는 행복해지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보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이런 의문을 가져 왔다면 그 노력은 오히려 단순한 행복을 깨뜨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산 시간이 오히려 그 '열심히'속에 들어 있는 무모함을 보게 했다면, 이제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마음의 어딘가에 흐르지 않는 물이 고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수야는 여자들이 성적 욕구를 상실하기 이전에 먼저 성적 매력부터 상실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성적으로, 관능적으로 활짝 꽃피어 완전한 발달을 이루지만 그것이 노화의 첫 징조들을 볼 것이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수도자의 맑은 안색이나 내면의 빛이 스며나오는 비구니의 환한 아름다움이 연상된다.
그리고 너무나 난무한 요즘 젊은 세대들의 진중하지 못한 성 의식으로 개탄하면서.
역시 연륜이 있는 수야의 지론에 공감하며 개인적인 생각으론,
참으로 견고한 자신의 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자에게도 성문을 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파멸하는 여자도 있으리라.
그러나 어떠한 파멸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배반해 버리는 사랑을 가졌을 때는 그 배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서로 털을 핥아 주는 짐승들처럼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으며...그것이 사랑인가.
그것 또한 방법이리라.
그렇다... 조금씩 서로 다른 방법으로 나는 한결같이 내가 살았던 시간을 어디론가 이장해 가면서 빼앗긴 이 가을을 보내려 한다.
모호한 구석이 많은 상대를, 내게서 가을을 뺏어간 이를 용서하면서.
나날의 생활을 돌아보며 스스로 묻는다.
나의 오늘은 순교의 하루였나 자살의 하루였나 하고.
우리의 하루하루도 하나의 끝이고 시작이라면 하루를 보내는 것 또한 작은 죽음인 게지.
나의 오늘은 순교였을까 자살이었을까.
어디어든 내가 가는 '그곳'만은 밝고 따스한 곳이기를 바라면서.
모자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상이라 교련 시간에도 안쓰기로 유명했었는데
그나마 이것이 젤 나은거 같대서 들이댔드만
찍사를 보니 꼭! 군밤 장수. 대박나리라~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