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소리

이면(裏面)

慧圓 2011. 4. 30. 05:39

 

20110429

 

전신을 감싸오는 허무감을 털어내며 오너의 방을 나선다.

주차장안에서 눈을 감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한없는 실망이 다가오고 또 밀려 간다.

무언가 목 안 가득 차올라와서 분연히 일어선다.

다시 올라가니 이미 오너는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엘레베이터 안,

"그렇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얘기안해도 내용은 알겠는데..나도 내 억지라고는 생각안한다."

---억지시거든요!!

"내가 승인 안하면 어쩔낀데?!"

당신 자체를 주체화 시키면서 권력을 남용 한다는데야 할말이 없다. 그래서 억지다.  

 

오너는 무슨 일 에서든 어떤 일 에서든 <회피> 라는건 없다.

이것은 본받을 일이다.

잠시 시간을 두고, 외출한 오너에게 통화를 해본다.

---운운하셨던 계약조건에 대해 굳이 말씀드리자면 오히려 말씀하신 부분과 상이하다는걸 아실겁니다.

      되도록이면 저 또한 근원적인 문제까지 들쳐내고 싶겠냐만, 기성결재와 추가부분을 관철시키자니 실무자(허상무)의

      불합리 처사에 대한 응대로써... 사장님께 보고드리는 겁니다.

"....알았다. 재경부와 얘기해 보지."

---감사합니다! (아예 확답으로 인정한다는 어조로)

 

때가 되면 철새들은 날아간다.

계절이 바뀌면 머무르던 곳을 떠나가는 새.

세월이 바뀌면서 떠나는 새와 칮아오는 새도 있다.

자기 자신이,

남들은 다 날아 갔는데도 떠나지 못하고 홀로 처져 있는 한 마리 철새와 같다고 생각하면서 본사를 나온다.

변하지 않을것 같은 그 초심은 세월과 함께 가려져 바라보는 시선에 회한만 묻어있다.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서지를 못하고 끊어야 할 때 끊지를 못하는 내가 점점 바보 같아진다 생각하면서.

 

 

 

 

 

 

창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다.

잿빛의 망토가 펄럭인다

천둥소리와 번개의 섬광이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비바람 소리가 어제의 암담했던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

망연히 앉아 거실 창밖을 바라보면서 망상을 하는 볼품사나운 모습이 비춰진다. 

 

내게 있어 이 나이는 어떤 모습일까.

그건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얼마만큼이나 연륜이 있고,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하듯, 내게는 왜 그렇게 진실로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걸까.

아니, 있기는 있다.

그리고도 나는 아직 진실로 외롭고, 내일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모르는 것도 내 진실의 하나가 아닌가.

 

어둠속에서 생각한다.

이 밤에도 어딘가에서 꽃이 지고 있으리라. 어딘가에서 꽃이 피고 있으리라. 생명이 가야 하는 길...

시간이 가고 나면 내 빈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질까.

비가 뿌리고 있는 창밖 저편으로 안개에 가려진 바다가 보인다.

저 모습이 어릴적 방에 걸려 있던 한 폭의 산수화와 닮아 있다.

 

 

 

 

그러나 희미한 야경의 이 도시의 어둠은 창녀의 일기장 같다.

사연이 많아서라기 보다 가출한 여자의 도시 같다. 무책임 뿐인.

알 수 없는 빛에 넘쳐서 안개에 쌓였지만 살아 움직이는 회색거리.

저 많은 거리에 발자국을 묻혀 놓고 나는 또 어디로 가는가.

마음은 끝없는 눈밭이다.

허허한 벌판에 밤새 부는 바람. 얼어 붙은 눈을 쓸면서 바람이 휘몰려 오듯.

그 속을 절름거리며 자신이  걸어간다.

 

친구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비둘기는 말이지.

어미가 새끼들에게 집으로 돌아오는 법을 가르친대. 멀리 날았다가도 집으로 찾아들어오는 법을.

그렇지만 사람은 집을 떠나서 걷는 법을 배워야 하잖아.

어른이 되면 누구나 미아가 되는게 아니겠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르치기보다는 집을 떠나 더 멀리, 더 풋풋하게 걸어가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지.

....그러는 나 자신이 정작 미아가 되어 돌아갈 집을 잃어 버렸다.

 

안녕, 정말 안녕이야.

잘 있어요. 지나간 시간들...생각할거예요.

많은 걸 배웠고 가르쳐 주었던 분, 오래오래 기억하겠지요.

내게 다정했고 늘 친절했고...잘해 주었던. 우린 참 많이 닮아 있었기에 이제 생각하니 우린 동질감속에서 서로를 배웠던가 봅니다.

창 밖의 풍경처럼 우리들 사이사이로 세월이 스쳐 지나간다 해도 잊지 않겠읍니다.

말할 수 있을 거에요. 감사했었다고. 많이 고맙다고.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제 한 시절이 빛나는 촛불이었고 꽃이 한창인 숲일 수 있었다고.

 

이 폐허와 같은 시간에 그냥...세월이 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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